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모든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686년(숙종 12)에 중창했으나 1748년 큰 화재로 모두 불탔다. 현존하는 대양루는 1758년(영조 34)에 지은 것으로, 마당을 가운데 두고 주불전인 적멸보궁(寂滅寶宮)과 마주보며 배치되었다.
대양루의 아래층은 절을 출입하는 중문(中門)으로, 위층은 승려의 수도장 및 불교신자들의 집회장으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맞배집으로, 측면은 아래층 3칸, 위층 4칸으로 상하 기둥의 위치가 일치하지 않는다.
건축양식은 출목(出目)이 있는 2익공식(翼工式)으로, 측면에는 익공 없이 도리와 받침장여가 길게 빠져나왔다. 지붕 양 측면에는 방풍판을 달아 바바람이 들이치는 것을 막았다.
주심첨차는 끝을 곧게 절단한 교두형(翹頭形: 밑면 끝을 활모양으로 깎아낸 형식)으로, 길이는 출목첨차와 같다. 기둥 사이에는 사각형의 판대공으로 주심도리를 받고, 대공의 양 끝에만 소로받침을 두었다.
누각의 마루는 우물마루로 동귀틀과 받침장여가 길게 외부로 돌출되고 누하주(樓下柱)가 굵어서 견실한 느낌을 준다. 벽은 적멸보궁을 향한 정면만 개방하고, 좌우 측면 및 뒷면에 판벽을 시설하였다. 뒷면에는 외부 경관을 조망할 수 있게 매칸에 두 짝 판문을 달았다.
상부구조는 7량으로 대들보 · 종중보 · 종보를 차례로 포개어 지붕을 지지하는 형식이다. 종중보는 대들보 위에 동자기둥[童子柱]을 세우고 쐐기모양의 보아지와 주두(柱頭)를 사괘맞춤(여러 갈래로 나누어 서로 맞물리게 하는 맞춤)하는 방식으로 결구하였다.
종보도 종중보와 같은 방식으로 결구했으며, 종보 위에 사다리꼴의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 산지 사찰의 문루 형식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구조가 견실하고 장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