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경애왕의 성은 박씨(朴氏), 이름은 위응(魏膺). 아버지는 신라 제53대 신덕왕이며, 어머니는 의성왕후(義成王后)이다. 또한, 제54대왕 경명왕의 아우이다. 경애왕은 924년 왕위에 올라 927년 포석정에서 연회를 하다 후백제의 왕 견훤(甄萱)의 습격을 받고 붙잡혀 자살한 왕이다.
능은 경주 서남산 삼릉계곡 입구의 소나무 숲 안에 있으며, 형태는 외형이 일반민묘와 같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별다른 특징은 없다. 지름 13.8m, 높이 4.2m로 일반민묘보다는 규모가 크나, 신라왕릉으로는 빈약한 편이며 발굴된 적은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경애왕을 남산 해목령(蟹目嶺)에 장사지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의 경애왕릉에서 남산쪽으로 2㎞ 정도 거리에 해목령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해목령의 서북쪽으로 200∼300m 거리에 있는 지금의 일성왕릉(사적, 1969년 지정)을 경애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