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문사지 석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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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사지 석조 후측면
경주 보문사지 석조 후측면
건축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제작된 직사각 형태의 석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경주 보문사지 석조(慶州 普門寺址 石槽)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보문동 848-16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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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제작된 직사각 형태의 석조.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깊이 0.61m, 길이 2.73m, 너비 2.14m. 화강암을 재료로 하여 만든 이 석조는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안팎으로는 아무런 장식문양이 없어 단순하고 소박할 뿐, 특이한 구조는 없다.

이러한 석조는 지금도 여러 사찰에서 급수용기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때, 그 당시에도 급수용기로 사용되었으리라 믿어진다. 이 석조는 비교적 크고 조각수법은 단순하나, 장중한 작풍이 당대의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석조가 있는 일대에는 경주 동쪽의 관문에 해당되는 명활산(明活山)과 경주분지의 중심에 있는 경주 낭산 일원(사적, 1968년 지정) 사이에 보문평야가 있으며, 이 보문평야 동편으로 통일신라시대 보문사 터가 전해오고 있다.

이 절터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金堂址], 동서 탑지(塔址)와 석등 받침돌[石燈臺石]·건물기둥 받침돌[柱礎石]·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등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普門(보문)’이라 새겨진 기와편이 수습되어 보문사가 있었던 위치로 보고 있다.

보문사 터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물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보아, 이 석조도 그 규모와 돌을 다듬은 솜씨가 같은 시기에 함께 만들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6 보물4(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6)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조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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