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진덕여왕릉 ( )

목차
관련 정보
경주 진덕여왕릉 좌측면
경주 진덕여왕릉 좌측면
선사문화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의 능. 왕릉.
이칭
이칭
진덕여왕릉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진덕여왕릉(慶州 眞德女王陵)
분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고대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산48번지 임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의 능. 왕릉.
내용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9,498㎡. 무덤의 지름은 14.4m, 높이는 4m이다.

진덕여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승만(勝曼)으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의 두 번째 여왕이며, 어머니는 박씨로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647년에 왕이 되어 654년에 승하하였다. 7년간 왕으로 있는 동안 국력을 길러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해 삼국통일의 토대를 닦았다. 죽은 뒤 사량부(沙梁部)에 장사지냈다는데 지금의 위치로 비정되고 있다.

무덤은 구릉(丘陵)의 중간 부분에 있다. 외부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밑둘레에는 병풍(屛風) 모양으로 다듬은 판석(板石)으로 무덤 보호석을 마련하고 판석의 사이사이에는 12개의 탱석(橕石)을 끼워 넣어 방향에 따라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겼다.

판석으로 된 호석 위에는 장대석(長臺石)으로 된 갑석(甲石)을 올려놓았으나 뒤에 보수하여 원래의 장대석이 아닌 것도 있다. 호석뿌리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무덤 및 둘레를 따라 깐돌[敷石]을 놓고 그 밖으로 돌난간을 세웠는데 지금은 난간부재가 거의 없어졌다. 무덤 앞에 있는 축대와 통로는 최근에 만든 것이다.

능의 형식은 기본적으로 선덕여왕 이후의 것과 동류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호석에 12지신상을 새겨놓은 성덕왕릉(聖德王陵)·경덕왕릉(景德王陵)·원성왕릉(元聖王陵)·헌덕왕릉(憲德王陵)·흥덕왕릉(興德王陵)·김유신묘(金庾信墓), 경주 구정동 방형분(方形墳) 등과 비교해볼 때, 조각수법이 가장 뒤져 있다.

의의와 평가

한편, 기록에 나타나는 매장지인 신라의 사량부는 현재의 경주 흥륜사지(興輪寺址) 일대로 추정되고, 아울러 12지신상의 조각수법이 뒤진다는 점 등을 들어 진덕여왕의 능이 아니고 신무왕릉이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왕릉연구』(이근직, 학연문화사, 2012)
『경주지역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경상북도·동국대학교신라문화연구소, 1986)
『문화재대관』사적편(문화재관리국, 1975)
「신라십이지상의 분석과 해석」(강우방,『불교미술』1, 197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