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정강왕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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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경주 신라 정강왕릉 정면
경주 신라 정강왕릉 정면
선사문화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50대 정강왕의 능. 왕릉.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정강왕릉(慶州 定康王陵)
분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고대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9년 08월 27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5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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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50대 정강왕의 능. 왕릉.
내용

196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3만 5,702㎡, 무덤의 지름은 15.7m, 높이는 4m이다. 정강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황(晃)이다.

경문왕의 둘째아들로, 886년 7월에 왕이 되어 887년 7월에 승하하였으므로 만 1년간 왕으로 있었다. 승하한 뒤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하였다는 기록에 따라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정강왕릉을 제47대 헌안왕릉으로 보는 설도 있다.

무덤의 외부모습은 둥글게 쌓아올린 봉토(封土) 밑부분을 3단으로 쌓아 무덤의 보호석으로 하였는데 모두 가공한 장대석(長臺石)으로 축조하였다. 하단의 지대석(地臺石)은 보다 넓게 하였고 그 위에 2단의 석축을 쌓았는데 최상면에 올려놓는 갑석(甲石)은 원래 없었다. 내부는 발굴되지 않아 확실치 않으나 시기적으로 보아 형의 무덤인 제49대 헌강왕릉과 같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추정된다. 왕릉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듬은 장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재위기간이 짧아 치적이 없으면서도 무덤의 외형이 선왕인 헌강왕릉과 같은 것은 형인 선왕의 무덤구역에 함께 축조하게 된 데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왕릉연구』(이근직, 학연문화사, 2012)
『경주지역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경상북도·동국대학교신라문화연구소, 1986)
『문화재대관』사적편(문화재관리국, 1975)
「신라십이지상의 분석과 해석」(강우방,『불교미술』1,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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