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3만 5,702㎡, 무덤의 지름은 15.7m, 높이는 4m이다. 정강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황(晃)이다.
경문왕의 둘째아들로, 886년 7월에 왕이 되어 887년 7월에 승하하였으므로 만 1년간 왕으로 있었다. 승하한 뒤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하였다는 기록에 따라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정강왕릉을 제47대 헌안왕릉으로 보는 설도 있다.
무덤의 외부모습은 둥글게 쌓아올린 봉토(封土) 밑부분을 3단으로 쌓아 무덤의 보호석으로 하였는데 모두 가공한 장대석(長臺石)으로 축조하였다. 하단의 지대석(地臺石)은 보다 넓게 하였고 그 위에 2단의 석축을 쌓았는데 최상면에 올려놓는 갑석(甲石)은 원래 없었다. 내부는 발굴되지 않아 확실치 않으나 시기적으로 보아 형의 무덤인 제49대 헌강왕릉과 같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추정된다. 왕릉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듬은 장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재위기간이 짧아 치적이 없으면서도 무덤의 외형이 선왕인 헌강왕릉과 같은 것은 형인 선왕의 무덤구역에 함께 축조하게 된 데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