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왕가수 ( )

목차
관련 정보
경주 왕가수
경주 왕가수
산업
지명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 탑정동 · 율동에 걸쳐 있는 숲.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 탑정동 · 율동에 걸쳐 있는 숲.
내용

경주시내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있다. 배동의 서천(西川) 동안(東岸)에는 소나무의 노거목이 있고, 모량천(毛良川)과의 합류점 부근에는 가슴높이둘레 100㎝에 달하는 왕버들이 몇 그루 남아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서안(西岸)은 소나무와 왕버들이 더 많이 자라고 팽나무도 뒤섞여 자라는 숲이다. 그 가운데 소나무숲은 가슴높이 둘레 최대의 것이 70㎝에 이르고, 울폐가 잘 유지되고 있다. 이 숲은 목랑(木郎)을 제사한 곳인데,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 진평왕의 집사(執事) 비형(鼻荊)은 뭇 귀신을 통솔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하룻밤 동안에 귀교(鬼橋)라는 큰 돌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며, 길달(吉達)이라는 귀신을 추천해서 서정(庶政:온갖 政事)을 보좌시키기도 하였다.

그 뒤 길달이 도망을 가자, 비형은 다른 귀신으로 하여금 길달을 잡아서 죽였으므로, 다른 귀신들은 그때부터 비형을 크게 무서워하고 비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도망을 치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비형을 가사로 한 것을 문간에 붙이고, 잡귀신을 쫓아내는 부적으로 삼는 향속(鄕俗)을 만들어냈다. 이것을 목랑이라고 말하며, 한편으로는 두두리(豆豆里)라고 칭하였다. 왕가숲은 이 목랑을 제사하는 곳이었다.

1231년(고종 18) 몽고 병사들이 침입해 왔을 때 목랑의 신탁(神託:신의 분부와 명령)을 숭앙하는 바 있었으나 영험이 없었다고 한다.

비형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의한 것인데, 그 내용은 행복을 주는 귀신은 재앙을 만들어 내는 귀신을 사역할 수 있고, 사람이 재앙을 면하자면 그 통솔자인 지배의 신에게 의뢰해서 잡귀신을 다스려 줄 것을 부탁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신불을 제사하자면 큰 나무가 있는 숲이 좋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것은 신은 하늘에 살고 있고, 땅으로 내려오려면 키 큰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 교통상 편리할 뿐 아니라, 숲은 원만하고 깨끗한 것이므로, 신을 모시는 데에는 가장 알맞은 환경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에서 왕가숲이 선택된 것이다. 왕가숲은 처음에는 일종의 종교림(宗敎林)이었고, 후에 수리(水利)를 위해서 기능을 발휘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朝鮮の林藪』(朝鮮總督府 林業試驗場, 1938)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