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조양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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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조양동 고분군 출토 노형토기
경주 조양동 고분군 출토 노형토기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나무널무덤 · 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나무널무덤 · 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조양동의 동서로 뻗은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9년∼1981년에 국립경주박물관이 4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내용

조양동유적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나무널무덤[土壙木棺墓] 39기, 독무덤[甕棺墓] 20기, 나무덧널무덤[木槨墓] 13기, 돌덧널무덤[石槨墓] 8기, 집자리 1기 등이 발굴되었다. 특히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에서 고분시대 사이에 속하는 분묘들이 집중적으로 조사되었기 때문에 경주지역 삼국시대 초기의 묘제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적으로 주목되고 있다.

나무널무덤은 39기인데, 구덩이의 형태는 평면이 긴 타원형 또는 너비가 좁은 장방형으로, 깊이는 1∼2m 정도로 깊은 편이고, 구덩이의 길이는 2∼3m, 너비는 1.5m 이내이다. 나무널무덤들 중 가장 고식(古式)으로 믿어지는 5호분에서는 민무늬토기·다뉴소문경(多紐素文鏡)·말종방울[馬鐸]·철꺾창[鐵戈]·철검·유리목걸이 등의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고, 그 밖의 나무널무덤에서는 와질토기(瓦質土器)와 함께 여러 철기가 출토되었다.

나무덧널무덤은 13기인데, 구덩이는 길이 약 4m, 너비 2m, 깊이 60㎝ 내외인 장방형으로 나무널무덤보다 규모가 크다. 출토된 토기는 모두 와질토기로 굽다리[臺脚]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동기는 전혀 보이지 않고 철기는 많이껴묻었다. 그 밖에 수정으로 된 목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나무널무덤·나무덧널무덤 등과 함께 같은 시기에 유아 또는 소아용 무덤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모두 20기가 발견되었는데, 모두 이음식[合口式]으로 가로놓여 있다. 관으로 사용된 토기는 일상 용기로 사용되었던 시루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다.

돌덧널무덤은 8기가 조사되었다. 밑바닥에 잔돌을 깔았고 덮개돌은 1기를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았다. 유물은 주로 동쪽에 껴묻어 있었는데, 긴목항아리[長頸壺]·굽다리접시[高杯]·굽다리단지[臺附壺] 등의 신라토기와 함께 철기가 조금 출토되었다. 이 토기는 5세기∼6세기의 경주 돌무지나무덧널무덤[積石木槨墳] 출토 토기와 같은 것들이다.

이 유적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로는 나무널무덤인 38호분에서 출토된 일광경(日光鏡)·소명경(昭明鏡)·사유경(四乳鏡) 등 4장의 전한시대(前漢時代) 거울을 들 수 있다. 이 거울들은 중국 낙양(洛陽) 소구(燒溝) 한묘(漢墓) 출토품들과 비교하여 모두 서기전(B.C.) 1세기 후반대의 유물임이 밝혀져, 이 고분의 연대는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나무널무덤은 가장 빠른 5호분을 기준으로 하여 서기전 1세기 후반 경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무덧널무덤의 경우는 묘의 구조 이외에 껴묻거리인 와질토기와 철기 등에서도 나무널무덤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대체로 2세기 중엽 정도에 나무덧널무덤으로 전환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에서 주목되는 것은 와질토기의 존재이다. 이 와질토기는 저화도소성(底火度燒成)으로 연질에 가까운 것이 많고, 조합식 쇠뿔잡이단지[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와 주머니단지·굽다리단지 등이 주류를 이룬다. 무늬는 대체로 꼰무늬[繩文]가 찍혀 있고, 주머니단지의 경우는 표면을 간 검은색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와질토기는 지역적 특색을 가지고 있는데, 경상북도 성주에서 일본의 대마도까지 주로 한반도 동남부일대에만 국한되어 있어, 춘천 중도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 일대의 원삼국시대 유적과는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주 조양동 유적이 발굴되면서 신화처럼 장막에 가려졌던 신라 초기의 역사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고고학에서는 ‘김해시대(金海時代)’와 ‘김해식 토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여 많은 논의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참고문헌

『慶州朝陽洞遺蹟』2(국립경주박물관, 2002)
『慶州朝陽洞遺蹟』1(국립경주박물관, 2000)
「朝陽洞土壙墓群4次發掘」(국립중앙박물관,『박물관신문』126, 1982)
「慶州朝陽洞古墳群2次調査 발굴개보」(국립중앙박물관,『박물관신문』100, 1979)
「慶州朝陽洞古墳 발굴개보」(국립중앙박물관,『박물관신문』96,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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