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거진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강원특별자치도 고산군 거진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동검 거푸집 · 석기 · 토기 등 출토된 유물산포지.
이칭
이칭
거진리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고산군 거진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동검 거푸집 · 석기 · 토기 등 출토된 유물산포지.
개설

고성 거진리 유적은 1915년에 일본 헌병 아카자와[赤澤]에 의해 발견되었고, 1919년에일본인 사와 시운이치[澤俊一]와 하라다 요시토[原田淑人]가 조사하였다.

내용

유적은 거진리 촌락 서남쪽의작은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거진읍 거진리에 속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유적으로, 채집된 유물은 모두 같은 시기에 속하는 일괄유물로 보인다.

유물로는 동검(銅劍) 거푸집[鎔范], 석기, 토기 등이 있다. 거푸집은 2장이 1조를 이루는 합범(合范) 중 1장의 작은 파편으로, 크기는 길이 4.15㎝, 너비 2.45㎝, 두께 1.88㎝이다. 양쪽 면에 동검의 주형이 새겨져 있는데, 한쪽 면에는 동검 끝부분의 한쪽 날부분[刃部]과 등대[鎬]의 일부가 있고, 다른 한쪽 면에는 슴베와 함께 칼몸 끝부분이 꺾어지는 곳[關部]의 일부가 남아 있다. 범면(范面)은 비교적 얕게 새겨졌는데, 세형동검의 주범(鑄范)으로 생각된다.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는 돌끌[石鑿], 반달돌칼[半月形石刃], 돌살촉[石鏃], 돌도끼[石斧], 돌검[石劍], 가락바퀴[紡錘車], 미완성 석기 등이다. 돌끌은 머리 부분이 없어진 것으로 가늘고 긴 편이며, 외날[片刃]의 날부분은 잘 갈려 있다. 반달돌칼은 약 1/3 가량만 남았지만 장주형(長舟形)에 속하며, 날은 외날이고 구멍은 양쪽에서 맞뚫었다. 돌살촉은 슴베가 없는 무경식(無莖式)으로, 전체적으로 이등변삼각형의 모습이다. 기부(基部)는 심하게 안으로 움폭 패어 있고, 촉신(鏃身)의 단면은 중앙부가 오목하게 들어간 편육각형이다. 돌도끼는 날부분이 없어졌는데, 전체적으로 갈린 상태가 거칠다. 숫돌[砥石]은 남은 파편으로, 단면은 방형(方形)에 가까우며, 오랫동안 갈았던 까닭에 가운데가 오목하다. 가락바퀴는 밑이 편평하고 위쪽은 약간 좁아진 모습으로,가운데의 둥근 구멍은 맞뚫렸다. 미완성의 석기 조각에는 석재의 양쪽 면을 길게 갈아서 끊어내는 ‘찰절법(擦切法)’을 사용한 흔적이 남은 것도 있다. 돌검은 무혈구 2단병식(無血溝二段柄式)에 속하는 것으로, 검신(劍身) 가운데에는 등날이 나 있고 단면은 납작한 마름모 형식[扁菱形]이다. 손잡이는 가운데 부분이 단을 지으며 좁아져 2단으로 나누어지는데, 아랫단의 한 면에는 톱날모양[鋸齒狀]의 선각(線刻)이 나 있다. 이러한 모습의 돌검은 주로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출토된 토기는 대체로 황갈색인데, 모래알이 많이 섞인 바탕흙으로 만들었지만, 그릇 모양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도 1점이 있는데, 색깔이나 바탕흙은 토기와 같으며, 토기의 바닥 파편을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유적은 민무늬토기 문화 범주에 속하며, 동검의 거푸집으로 보아 세형동검이 시작되던 시기에 속하는 취락유적일 가능성이 많다. 또한 동검문화 요소 외에 동북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얇은 널돌에 작은 홈을 내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에 가공해 만드는 찰절법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한반도의 양대 문화가 복합된 유적으로 보인다. 특히 동검 거푸집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의 후기에 속한 유적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고성 거진리 유적은 동해안 지역에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 후기의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석기 제작 기법은 동북지방의 석기와 연관되어 있지만,돌로 만든 동검 거푸집을 통해서 동해안 지역에서 동기(銅器)가 자체적으로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거푸집과 청동기』(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2011)
『국립박물관 소장 청동기 거푸집』(국립중앙박물관, 2010)
『한국의 청동기문화』(국립중앙박물관, 1992)
「鎔范出土の二遺蹟」(澤俊一,『考古學』8-4, 東京考古學會,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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