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계면굿 ( 계면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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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에서 행하는 굿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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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에서 행하는 굿거리.
내용

‘계민굿·제면굿·제민굿’이라고도 한다. 무조(巫祖) 계면할머니를 모시는 이 거리(굿)는 무가의 내용에서 계면할머니가 단골네들을 찾아다니며 걸립(乞粒 : 동냥)하는 것으로 보아 단골들을 위한 굿으로 여겨진다.

‘계면’이라는 말은 무당조상 또는 무당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보지만, 무당의 단골구역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무당이 새신(賽神)을 위하여 단골네들을 찾아다니면서 집주인의 행운과 집안의 태평을 빌어주고 돈이나 곡식을 얻는 걸립을 ‘계면놀이’라 하고, 또 처음 무당이 되는 직접적인 행동으로서 강신자(降神者)가 내림굿을 하기 전에 마을을 돌면서(7집이나 21집) 신점을 쳐주고 걸립하는 것을 ‘계면돌기’, ‘계면놀이’라 하고, 이 때의 무녀를 ‘계면각시’라 하며, 굿이 끝나고 구경꾼에게 나누어주는 떡을 ‘계면떡’이라고 하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계면굿의 진행은 쾌자를 입고 부채를 든 차림의 무녀가 청배무가(請陪巫歌 : 신령이나 혼령을 불러 모시는 무당의 노래)를 부르고 이어서 공수, 유흥적인 계면할머니놀이를 한다. 계면할머니는 아이를 열 셋이나 낳은 다산녀(多産女)로 등장, 굿하는 흉내를 내고 관중들에게 복떡 또는 명떡이라고 하는 계면떡을 나누어준다.

계면굿 무가(巫歌)는 현재 세 편이 채록되어 있는데, 채록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그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라도 전주 땅(또는 지리산) 김 정승댁에서 외동딸을 낳아 잘 길러 서울 이 정승댁으로 출가를 시켰다. 시집온 지 3년이 못되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관이 묏자리를 잡아주면서 “이 묘를 쓰고 3년이 되거든 다른 자리로 옮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해가 온다.”고 하였으나 옮기지 않았다. 4년 절기가 돌아오니까 이 정승 며느리가 갑자기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를 않고 실성하여 헛소리를 하였다.

그 때 그 마을 사공이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이 정승 며느리가 사공의 아들이 있는 곳을 알아 맞추었다(또는 앞집의 잃어버린 혼수용 패물을 찾아주기도 한다.). 그러자 이 정승 집안에서는 “양반가문에 쌍놈이 났다.”고 하여 가두어놓고 굶겨서 말려 죽이려고 하였다.

이러할 즈음에 집안에서는 곳간에 불이 나고 가축이 죽는 등, 그 집안에 신(神)이 나느라고 재난이 잇달아 결국 망하고 말았다. 시집에서 쫓겨난 계면할머니(이 정승 며느리)는 산간벽지라든지 명산대천에 들어가 공을 드린 뒤 점도 잘 치고 굿도 잘 하여 먹고사는 것은 풍족하였으나, 신(神)을 이기지 못하여 집에 있지 못하고 동냥(걸립)을 하러 다녀야 하였다.

이즈음에 삼씨를 받아 길쌈을 가는데, 욕심 많고 심술 많은 계면할머니는 며느리에게는 불에 달달 볶은 삼씨를 주고 딸에게는 온전한 삼씨를 주었으나 삼씨가 바뀌고 말았다.

며느리의 삼이 무럭무럭 자라 베를 짜서 놓으니 모두 속곳(속옷)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남은 베는 ‘두 귀 나는 전대와 네 귀 나는 자루’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자루와 전대를 메고 단골집을 돌아다니는데, 계면할머니를 박대한 단골들 집안에는 주언(呪言)을 하여 화를 주고, 신심 깊은 단골을 만나 대접을 잘 받고 얻어온 쌀로는 그저 먹을 수 없다 하여 계면떡을 빚었다.

떡을 놓고 계면할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다툰 끝에, 며느리가 화가 나 물 길러간 사이 부뚜막에 얹어놓은 며느리의 떡을 청삽살이가 먹어버렸다. 화가 난 며느리는 개를 때려죽이고 껍데기를 벗겨 장구를 만들었다. 이 장구소리로 인하여 천하무당·지하무당이 나오고 굿하는 법이 생겼다고 한다.

이 무가는 계면할머니가 무당조상이 된 내력담으로, 무조신화(巫祖神話)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장구와 굿하는 법의 유래담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또한, 계면할머니의 출신집안이 양반 정승가문으로 나타나고, ‘정승가문에 무녀가 나는 법’이라는 무가의 내용으로 보아 ‘정승가문에 보살 난다.’는 속담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신화가 어떤 집단의 정신적 상황을 표출한 가장 원초적 표현’이라고 볼 때, 이를 통하여 천민으로 멸시의 대상이 되었던 무당의 신분적 갈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삽화처럼 들어간 “며느리 삼씨는 죽으라고 달달 볶아주고 딸의 삼씨는 온전한 것을 준다.”는 부분이나 그 밖의 내용에서의 계면할머니의 심술은 영등할머니의 심술과도 유사하며, 이를 통하여 전통사회의 고부간의 갈등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동해안무가』(최정여·서대석, 형설출판사, 1982)
『한국무가집』 1(김태곤 편, 집문당, 1979)
『한국시가의 민속학적연구』(김선풍, 형설출판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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