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갈매동 도당굿 (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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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갈매동 도당굿
구리 갈매동 도당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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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에서 마을의 안녕함과 풍요를 비는 마을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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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에서 마을의 안녕함과 풍요를 비는 마을굿.
내용

원래는 '갈매동 산치성 도당굿'이라고 한다. 1995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마을의 안녕함과 풍요를 비는 마을굿으로 제당은 마을 뒷 편 도당산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당집 상량문 기록으로 보아 1935년 당집을 세운 듯하다. 격년마다 봄에 치러지는 이 굿은 전형적인 경기도 북부의 도당굿 양식을 취하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1928년도와 1960년도 기록된 도당굿 제의관련문서 2개가 남아 있어 굿청진설도의 내용을 알 수가 있다.

상차림은 대동차지와 무당차지가 있는데 대동차지는 마을주민의 상차림을 말하는 것으로 우측에 제삿상, 가운데에 제석상을 각각 4상씩 모두 12상을 차린다. 그 밖에 말명상과 안반상, 호구상, 3개의 시루를 바친다. 무당차지는 무당이 도당굿을 할 때 차리는 상을 말하는데 대신반과 만신상, 전악상의 3종류로 나뉘는데 만신상은 만신 4명이 각 1상씩 차린다.

제물 목록으로 볼 때 이 굿은 제물 준비가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할 뿐 아니라 굿의 규모가 컸음을 알 수 있다. ’갈매동 산치성 도당굿‘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과 하당의 개념이 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상당은 산신당이요 하당은 도당을 일컫는다.

도당산 중턱에 산신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당집은 없고 나무가 당을 대신한다. 도당집에는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가 모셔져 있다. 대부분 경기도 도당굿이 시월 상달에 있는데 비해 이곳 당굿은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에 행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우선 음력 2월 초하루가 되면 제의를 주관할 만한 삼화주를 뽑는다. 삼화주로 뽑힌 사람은 그날 초부정을 행하는데 밥 3공기, 무나물 1그릇, 옥수(玉水) 3그릇을 차린다. 그 다음 ‘비내리’라는 행사를 하는데 삼화주가 모여 도당할머니와 도당할아버지에게 빌고 나서 넓은 그릇에 쌀을 붓고 나무를 세워서 대를 받는다.

대잡이로 지명된 사람은 대를 가지고 대가 이끄는 데로 따라가 마을 사람 중에서 도가를 지명한다. 도가로 뽑힌 이는 초상집이나 험한 일을 피하고 외출도 삼간다. 음력 3월 초하루 날 당주·도가·화주·시주 5명이 마을의 좌장격인 사람의 집에 모여 제일을 정하고 곧바로 당집에 가서 대들보에 연월일시를 적은 종이를 붙여 놓는데 이는 날이 잡혔음을 도당신에게 알린다는 뜻이다.

제수는 마을에 전해오는 문서에 의해 준비하는데 대개 청량리시장으로 사러간다. 장을 볼 때는 초상을 치른 집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최대한 좋은 물건을 사며, 절대로 물건값을 깎지 않아야 한다. 갈매동 도당굿 제물 중 특이한 것은 조포와 계면떡이다.

조포는 두부를 말하는데 음력 3월 2일 밤 산치성을 올리기 전에 숙수간(熟手間)에서 손두부를 만들어 올린다. 계면떡은 도당굿 열네거리 중 열 번째 계면떡거리에서 만신이 만수받이를 하면서 파는 메떡이다.

본격적인 제의가 시작되면 우선 산치성과 서낭신을 맞이하는 서낭맞이로 이어지고, 서낭맞이가 끝이 나면 도당굿의 핵심 행사인 유가(遊街)에 들어간다. 유가는 일종의 길놀이로 횃대를 든 청년들이 불을 밝히는 가운데 무당, 당주가 앞장서고 바라·장구·북·피리·대금·해금 등의 악기를 든 악사들이 뒤를 따르고 그 뒤를 마을 주민들이 따른다.

이 때 주민들은 문을 열고 집밖으로 팥 시루를 내오는데 그 위에 북어를 올리거나 초를 켜서 복을 빈다. 대가 집 안으로 들어가 축원을 해주면 대주가 나와서 절을 하고 유가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집집마다 문 앞에 불을 피워 유가를 맞아들인다는 신호를 한다.

유가를 다니다가 새우개 고개에 당도하면 만신은 검암산할머니와 서낭할아버지의 결합을 주선하는 비손(신에게 소원을 빔)과 공수를 한다. 결합이 끝나면 만신은 서낭시루떡·제주·북어 등을 사방에 뿌리면서 고수레를 한다. 이는 음·양의 조화로 생산 곧, 풍농과 가축번식을 간절히 기원했던 민속신앙의 유풍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듯 유가는 산치성을 끝내고 이어지는 마을공동체의 축제이다. 마을굿이 시작됨을 널리 알리는 유가행렬을 통하여 마을사람들은 굿을 맞이하고 이때 각자의 집에서는 집안고사를 지낸다. 유가행렬이 동네 사거리에 이르면 유가를 마무리하고 여기에서 사거리고사를 지낸다. 이것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고사를 올림으로써 주민들의 안녕함을 기원하는 거리굿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유가가 끝나면 곧이어 본굿이 시작된다. 굿거리는 무당이 진행하는데, 초부정, 가망청배, 조상거리, 신할머니, 별상, 대감놀이, 제석거리, 호구거리, 바라, 계면떡, 군웅거리, 걸립, 당굿, 뒷전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때에는 갈매동 주민들뿐만 아니라 인근에서도 사람이 몰려왔다. 예전에는 500∼600명이 참여할 정도로 성대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구리의 역사와 문화』(구리시, 1996)
「갈매동 도당굿」(주강현, 『구리시지』 상, 구리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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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선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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