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의 일종으로 고려시대에는 관어를 위한 관어대(觀魚臺)가 있었다.
관어의 유래는 중국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5년조에 “5년 봄에 은공은 상(裳)에서 고기잡는 연장을 갖추고 고기잡이를 구경하였다(五年春 公矢魚于裳者)······ 5년 봄에 은공은 도읍을 떠나 멀리 상에까지 나가서 낚시질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장희백이 간언하였다.(五年 春 公將如裳觀魚者 臧僖伯諫曰)”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관어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기록은 고려시대에 나타난다.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권14 예종 경자14년(1120) 8월 무술일에 왕이 대동강에 가서 배를 타고 물고기를 구경했다고 하였으며(戊戌幸大東江 登舟觀魚), 같은 책 열전(列傳) 권 제48,49 신우(辛禑) 10년 12년 7월과 4월에 동강(東江)·호곳(壺串)·귀법사(歸法寺), 남천(南川), 해풍군(海豊郡) 중방지(重房池) 등에서 관어를 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 때 중방지에서는 우왕이 비와 우박이 내리는 날인 데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보다가 발가벗고 물에 들어가서 고기잡이를 하였다.(京師 四月丙朔 雨雹禑觀魚于海豊郡重房池稞而捕魚)고 하니 특히 우왕이 관어(觀魚)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영해면 괴시 2동에 관어대라고 하는 지명이 있는데 이것은 목은(牧隱)이색(李穡)이 명명한 것이라고 전한다. 고려시대의 관어나 관조(觀潮) 풍속은 일반백성이라기 보다는 궁중이나 양반계급의 풍속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