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3년(숙종 39)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정철(金廷哲)·장시행(張是行)·손전(孫佺)·장익정(張翼禎)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06년(순조 6) 서원으로 승격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당시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상현사(尙賢祠), 신문(神門), 강당인 경현당(敬賢堂), 동재(東齋)·서재(西齋), 정문인 입도문(入道門) 등이 있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현재는 서원훼철 뒤 건립된 간암재(澗巖齋)와 유허비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