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재판소

  • 역사
  • 제도
  • 개항기
  • 대한제국기
근대 개항기 상소재판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법원.
이칭
  • 이칭평리원(平理院)
제도/관청
  • 설치 시기1895년
  • 폐지 시기1899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병호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근대 개항기 상소재판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법원.

내용

1895년 3월부터 1899년 5월까지 존재하였다. 1895년 3월 25일 <재판소구성법>에 의하여 이른바 근대적인 재판소제도가 도입되어 형식상 사법권이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설치되었다.

한성재판소와 인천재판소의 상소심재판소이었으며, 법부에서 임시로 개정하는 합의체였다. 재판장 1인, 판사 2인, 검사 2인을 두었는데, 재판장은 법부대신 또는 법부협판이 맡았다.

판사는 법부의 칙임관 · 주임관 또는 한성재판소 판사 중에서 왕이 임명하였는데, 단 협판 이하 중에서 판사를 임명할 때는 내각총리대신을 경유하여 법부대신이 추천하게 되어 있었다.

검사는 법부 검사국장과 검사국소속 검사 중에서 법부대신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당시의 재판소로서 정식으로 개청된 것은 한성재판소와 고등재판소 뿐이었다. 같은 해 4월 감영(監營) · 유수영(留守營) · 지방재판소의 상소사건도 심리하게 되었다.

1896년 8월부터는 순회재판이 개시될 때까지 각 개항장 재판소의 상소사건도 심리하였으며, 칙임관과 주임관의 범죄도 당분간 관장하였다. 1899년 5월 30일 재판소구성법의 개정으로 평리원(平理院)으로 개칭되었다.

참고문헌

  • - 『한말근대법령자료집』 Ⅰ·Ⅱ(송병기·박용왕·박한설, 국회도서관, 1970·1971)

  • - 『근대한국재판사』(김병화, 한국사법행정학회,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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