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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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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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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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이 넓고 굽이 낮으며 덮개가 반만 되어 있으며 남자 고무신은 갖신을 본떴고, 여자의 것은 당혜(울이 깊고 코가 작은 가죽신)의 한 가지를 본떠서 만들었다.

고무는 11세기에 멕시코에서 공에 사용한 것이 시초이며, 유럽에서는 1770년 프리스틀리(Priestley,J.)가 지우개로 사용한 이래 고무신·운동화·타이어·고무줄·고무장갑·비옷·전기절연체와 각종 전자제품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 고무공업이 시작된 시기는 1919년으로 이하영(李夏榮)이 대륙고무주식회사를 처음 창설하였고, 1921년김성수(金性洙)가 중앙상공주식회사를, 김동원(金東元)은 정창고무공장을 평양에 설립하였다. 이와 같은 선각자들의 기업으로 그 당시 짚신·미투리·갖신·나막신을 신을 때 고무신이 생산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고무신은 갖신이나 당혜·짚신보다 방수가 잘 되어 실용적이었으며, 가격면으로도 미투리가 25전인 데 대하여 40전이었고, 고무제품으로는 신발류가 유일한 생산품이었다. 서양에서 고무로 만든 구두형의 신발이 들어온 시기도 1921년 초로 볼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바닥만 고무로 만들고 곁돌이는 가죽이나 베로 만든 편리화(便利靴)·경제화(經濟靴)·경편화(輕便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고 있을 때 구두형의 총고무화가 수입되었다.

1922년대에 비로소 우리 나라에도 고무신공장이 난립하여 구두형이 아닌 현재와 같은 고무신을 다량 생산하였는데, 그 상표들을 보면 경표(京表)·상표(上表)·별표·대륙표(大陸表) 등이었다.

고무신을 최초로 신은 사람은 순종이었다. 고무신 사용 변천의 흐름을 살펴보면, 1938년부터 1945년까지는 민족항일기로 통제기였고, 1945년 이후 6·25전쟁까지 전성기를 이루었다가, 1960년경부터 고무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발의 피부와 위생학적인 면을 고려하여 만든 운동화의 대중화 및 구두의 생활화로 그 선호도가 날로 저하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0)
『한국복식사』(석주선, 보진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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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조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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