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읍 고사부리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이다. 200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성은 해발 132m의 성황산에 자리하며, 성황산과 그 서쪽에 위치한 해발 126m의 봉우리를 감싸며 북동-남서방향으로 길게 축조된 장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에 처음 축조된 중방성으로 확인되었으며, 백제의 지방통치체제를 파악할 수 있는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기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고대 군사사와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성벽은 협축법에 의해 축조하였는데, 석재는 외면을 장방형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성돌을 이용하여 줄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으며. 성돌의 크기도 거의 일정하다. 외벽은 그랭이 기법을 사용하여 성석들 사이에 틈새가 거의 확인되지 않을 만큼 정연하게 쌓았다.
문지는 남 · 북 · 서문지 등 3개소가 확인되었다. 특히 남문지는 성 내부로의 진입이 가장 용이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내의 주요시설과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정문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문지는 두세 차례의 개 ·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백제시대에 축조한 문지는 어긋문 형식으로 확인되었다.
집수정은 추정 수구지로부터 남동쪽 8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성내에서 지형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우수가 집중되는 곳이다. 초축 집수정의 평면 형태는 방형으로 추정되고 백제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집수정의 북벽 · 동벽 바닥과 서벽의 안쪽 면에서 삿자리가 확인되었다. 이는 축조시 풍화암반층을 일부 파내고 삿자리를 바닥과 벽면에 깐 다음 회갈색의 점토를 붙이고 석축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공법은 현재까지 확인된 예가 없다. 2차 집수정은 동서로 긴 장방형으로 초축 집수정 위에 축조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사부리성에서는 백제의 지방통치체제를 파악할 수 있는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즉 1차 발굴조사에서는 ‘홍치(弘治)’명 암막새와 1734년(영조 10)에 해당되는 ‘옹정(擁正) 12년’ 암막새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2차 발굴조사에서는 북문지에서 ‘상부상항(上⻏上巷)’명이 새겨진 인장와가 출토되었으며, 3차 발굴조사에서는 집수정에서 기마병 선각와, 신라 왕경의 6부 조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본피관(本彼官)’명 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러한 명문와를 바탕으로 고사부리성이 백제의 중방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백제의 중방문화, 고사부리성에서 찾다』(전북문화재연구원, 2015)
- 『정읍 고사부리성: 종합보고서(1∼5차 발굴조사)』(전북문화재연구원, 2013)
-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봉수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정읍 고부구읍성』 Ⅰ(전북문화재연구원, 2007)
- 「백제 지방통치조직의 변화와 중방성」(김주성, 『백제문화』 55, 2016)
- 「호남지방의 백제산성」(최인선, 『한국성곽학보』 26, 2014)
- 「정읍 고부의 지역적 형성과 변화 과정: 고·중세 시기를 중심으로」(김병남, 『전북사학』 3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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