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세력에 편입되기 전 그 지역에 거주하던 집단의 묘제로 여겨진다. 1974년 4월 도로확장공사중 구릉의 동쪽 지표 밑 40㎝쯤에서 큰 독[大甕] 2기와 그에 껴묻힌 토기 8개가 마을 사람에게 발견된 이후 조사, 보고되었다.
독널은 둥근 몸통과 외반광구(外反廣口)의 목부분이 있는 두개의 큰 독의 아가리를 서로 맞추어 수평으로 눕혀놓은, 이른바 이음식 독널[合口式甕棺]이다. 독널은 장석세립(長石細粒)이 약간 섞인 회색 바탕흙[胎土]의 경질토기(硬質土器)로 되어 있으며, 두 독의 길이는 각각 89㎝와 83㎝, 입지름 50㎝와 48.5㎝, 지름 72㎝와 58.4㎝이다.
두 독널이 이어졌을 때 내부길이는 168㎝가 되는데, 이 수치는 적어도 160㎝ 정도의 성인을 반듯이 눕혀 매장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껴묻힌 토기를 보면, 신라식 토기에서 발견되는 목항아리[長頸壺]의 형태를 이루어가는 단계임을 알 수 있다.
독널은 신라 · 가야계의 목항아리와 평행세선물결무늬[平行細線波狀文]로 대표되는 신라식 도질토기(陶質土器)에 선행하는 백제계 서해안회색도질토기로서,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독무덤 중 비교적 늦은 시기의 것으로서 실연대는 약 4세기 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