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교육의 주 대상은 일시적인 해외 체류자보다는 정착성을 지닌 영주교포들과 그 자녀들로서, 지역적으로 일본·북미 등이 중심이 되었으나 1970년대 이후 해외취업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반영하여 중동 지역의 일시 체류자에 대한 교육도 점차 비중이 높아졌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세계화에 따라 러시아·중국·동남아 등에 대한 재외동포교육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재외동포교육은 영주교민과 일시 체류민 등 교육 대상에 따라 교육내용을 2원화하여 실시하고 있으며, 국내교육과는 특성을 달리하여 한편으로는 거주국가의 낯선 문화적 배경과 생활양식 속에서 그곳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는 여러가지 능력을 배양해 주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민족으로서의 모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정체성과 민족적 동질성을 고취하여 세계속에 드높은 한국인의 상을 심어주고 현지에서 존경받는 구성원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 교육목표의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재외동포교육의 주체는 해외동포 자신들이다. 따라서 그 교육적 활동과 사업 조직 등이 해당 지역의 동포 스스로에 의해서 시작되고 추진되어 왔고 앞으로도 동포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는 동포들이 자녀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장학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해외동포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민족애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민족의 미래와 동포사회의 동향이 국익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우리 나라 정부와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과 지원이 요청되며, 따라서 점차 정부가 재외동포교육의 행정적·재정적 주도권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각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동포와 그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재외교육기관은 3가지 형태가 있는데, 첫째, 상사 주재원 등 일시체류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국내 및 현지의 정규과정을 교육하고 있는 정규학교인 한국학교가 있고, 둘째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국어·한국역사·한국어 문화를 가르치는 사회교육기관 성격인 한국교육원이 있으며, 셋째로는 동포들이 자율적으로 설립하여 주말을 이용하거나 또는 정시제로 운영하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글학교(토요학교)가 있다.
이 중에서 한국학교는 일시체류민 자녀들의 귀국 후를 대비해 주기 위하여 대부분 국내교육과정과 유사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일부 학교는 현지국가의 교육과정을 교육하거나 또는 두가지를 병행 교육하고 있기도 하다.
교육기본법(법률) 제29조 제2항을 보면 ‘국가는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필요한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이들 재외교육기관에 시설비와 운영비 일부와 그리고 교재, 교과서, 시청각 자료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한국학교와 한국교육원에는 정부에서 우수한 교육공무원을 선발하여 파견해주고 있고 아울러 미국·일본·러시아·중국·독일·프랑스 등에는 주재공관에 교육관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 파견관들은 파견기관에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 외에도 재외동포모국이해·민족교육을 실시하거나 관내 재외교육기관의 운영지도, 교원연수, 장학지도, 그리고 유학생 지도, 동포자녀들의 모국수학 안내, 동포교육을 포함한 국제간 교육 교류협력을 위하여 지원하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은 주로 한·일합방을 전후해서 해방전후까지 고국을 떠난 비극적인 유민세대와 그후 6·25전쟁 이후 살길을 찾아 미국을 비롯한 중남미 등 세계 무대로 이민한 해방 후 이민세대 그리고 국력신장과 더불어 한국민의 해외진출이 급증함에 따라 정치·경제·문화·교육 등의 이유로 한시적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일시 체류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동포는 1999년 현재 564만여명에 이르고 있어 중국, 이태리,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 4번째인 해외동포 대국이며, 본국 인구 대비 해외교민 비율로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2번째로 많으며, 세계 99개 국가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
우리 동포가 가장 많은 나라는 2015년 현재 중국으로 258만여 명이고, 다음은 미국으로 223만여 명이며, 일본은 85만여 명이다. 그 다음으로 캐나다,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순으로 재외 동포가 분포되어 있다. 동포수 중에 일시 체류민수는 역시 미국 14만여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일본, 중국, 호주, 독일, 캐나다, 인도네시아, 영국 순으로 진출해 있다.
이렇듯 재외동포사회는 양적·질적으로 크게 팽창하면서 조국의 경제적, 정치적 발전에 있어서도 재외동포가 감당해야 할 몫은 상당하며, 이런 의미에서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재외동포들은 우리 민족의 큰 자산이며 조국통일과 세계 중심국가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정부에서는 재외동포들에 대하여 ① 거주국 내의 안정된 생활영위와 존경받는 구성원으로서 성장 지원 ② 한민족으로서 정체성 유지와 모국에 대한 유대감 강화 지원 ③ 국가발전에 재외동포 역량 활용의 기본방향을 지원하고 있다.
재외동포교육의 시작은 일제하에 민족 사상 고취와 조국 독립을 위한 재외한국인들의 자발적이고 자주적인 민족교육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10월에 결성한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이 그후 1950년 6월에 해산되면서 1955년 5월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결성되어 반한 교육활동을 한데 자극을 받아 1946년 10월 재일본조선거류민단으로 분리되었다가 1948년 8월에 결성한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에서 자체적인 교육을 하였다가 1960년대에 들어와서 재외동포자녀들의 잃어버린 민족성 회복을 위한 관심으로 정부차원에서 교육비 보조, 교육요원 파견, 주일공관에 장학관 파견 등 동포교육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정부주도의 재외동포교육은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발전되어 왔고 확대되어 왔다. 1962년도에는 서울대 학생지도연구소 주관으로 재일동포학생의 본국 대학수학과정을 운영하였고, 1963년도에 한국교육원의 전신인 한국문화센터 10개소를 설치하였으며, 1966년도에 모국초청 하계연수와 모국방문 수학여행을 실시하였다.
1972년도에 미국·독일·프랑스 공관에 장학관실을 설치하였고, 1975년 5월에 문교부에 재외국민교육과가 신설되면서 명실공히 정부차원의 지원이 공식화되었다. 1977년도에 서울대학교 부설 재외국민교육원을 개편하여 모국수학생 예비교육, 하계학교 운영, 재외 교원연수 등을 전담하였으며, 1993년도에 재외국민교육원을 교육부 직속기관인 국제교육진흥원으로 개편하여 본격적인 재외동포교육 지원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교육부에서는 재외동포교육의 기본정책수립, 재외교육기관 설치·운영 및 지원, 교육공무원 선발·파견, 귀국학생 국내적응교육 기본계획 수립 등을 관장하고, 국제교육진흥원에서는 재외동포용 교재 개발·보급, 재외동포교육담당자 국내 초청 연수, 동포학생 초청 연수 및 모국 수학 과정 운영 등을 담당하고 이의 지원을 받아 한국학교·한국교육원·한글학교에서 직접 교육을 실시한다.
재외동포교육은 그 유형을 크게 두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교육장소를 기준으로 할 경우 해외와 국내에서 실시하는 교육으로 나누어지고, 둘째, 교육 내용으로 구분할 때는 귀국 후를 대비한 국내연계 교육과 영주를 전제로 하여 적응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현지과정 교육, 그리고 모국을 이해하기 위한 민족교육과정인 사회교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재외동포교육은 이제 지역적으로 상당히 다양해져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교육방법모색이 요청되고 있으며, 동포들의 체류 유형과 거주지역의 언어권, 거주사회의 환경과 교육수요 등을 고려한 다원화된 다목적 시책 수행에 유효 적절한 정 책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현지교육은 일본, 북미, 중국, 독립국가연합, 유럽, 동남아, 태평양, 중동, 중남미 등 8개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일본지역
일본에는 696,811명의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해방후 일찌기 귀국을 앞두고 일본어밖에 모르는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일본 각지에 서당식 국어강습소를 설립하여 일본학교에 재학하던 자녀들을 입학시키고 민족교육을 시작하였다.
지금은 동포 자녀들이 민단계 한국학교나 조총련계 학교 또는 일본계 학교 등에 취학하고 있으나 한국학교가 조총련계 학교에 비하여 양적인 면에서 크게 뒤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한국학교는 4개교로 1954년에 설립된 동경한국학원(東京韓國學園)이 동경한국학교(東京韓國學校)를, 1946년에 설립된 금강학원(金剛學園)이 대판(大阪) 금강초등학교·금강중학교·금강고등학교, 1947년에 설립된 경도한국학원(京都韓國學園)이 경도국제학교(京都國際學校)를, 1946년에 설립된 백두학원(白頭學園)이 대판 건국초등학교·건국중학교·건국고등학교를 유지, 경영하고 있으며, 1999년 현재 4교에 157명의 교원과 1,601명의 학생이 소속되어 있다.
이밖에 사회교육기관 성격의 14개 한국교육원이 있으며, 25명의 교육공무원이 파견되어 있다. 한국교육원은 본국 정부의 주도하에 1963년도에 한교교육문화센터(韓僑敎育文化Center)로 개칭되었다가 1977년도부터 현재의 한국교육원으로 재개칭되었다. 최초의 목적은 사회교육적 방식의 민족교육이나 조총련을 의식한 국가홍보, 반공교육, 선전활동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일본계 고교에 재학하고 있는 동포자녀들은 학교내에 설치된 민족학급과 민족써클에서 국어와 국사 등의 민족교과를 배우기도 하나 조총련계 교원이 민족학급 운영을 주도하는 사례가 있으며, 1999년도 현재 민족학급의 수는 25개교에 25학급이 설치되어 있고, 민족써클은 200개교에 200개 클럽이 구성되어 있다.
동포자녀들에 대한 장학사업을 실시하기 위하여 1973년부터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재단법인으로 승인을 받아 설립된 한국교육재단은 약 15억엔(¥)의 기금을 가지고 있으며 각종 동포교육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교육진흥원에서 실시하는 모국수학과정 및 하·동계 초청연수는 일본 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민단의 적극적인 지원과 요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일동포사회가 문화변용에 의한 일본으로의 동화와 아울러 혼인적 동화, 즉 어맬가메이션(Amalgamation)을 통해서 빠른 속도로 일본으로의 동화과정을 밟고 있고 재일동포수가 감소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정부 주도에서 탈피하여 민단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교육을 추진하고 재일동포들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방안이 대두되고 있다.
(2) 북미지역
미국의 이민 역사는 약 100년으로 교민 1세대는 경제적 생계유지가 1차적 관심이었고, 1955년 홀트(Holt, Harry)가 8명의 고아를 데리고 간 후 입양자수가 많았으며, 최근에는 이민자들이 급증하여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가 되었다. 1999년 현재 미국에 2,057,546명, 캐나다에 111,041명의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문화적 특성을 살리고 보존하는 다문화정책을 견지하는 미국에서 우리 교민들은 거주국 교육을 받으며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실시된 한민족의 교육은 1903∼1905년도에 하와이에 도착한 한인 이민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1906년 9월 하와이 한인감리교회 안에 세워진 유급 학생양성소가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에서는 적령기를 넘어 미국의 공립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한인 청년층을 위하여 중등교육기관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속성과정도 병설, 운영하였다.
당시 미국에는 이민간 한인들의 손으로 한인 국어교육기관이 도처에 설립되어 1907∼1929년에 하와이에 18개의 학교가, 미국본토(주로 캘리포니아)에 6개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공립학교 취학에 있어서도 이민 직후인 1908년 하와이교포 전체자녀의 과반수가 취학하였으며, 1933년 하와이이주 동양인 취학자 총수에서 한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앞서는 등 높은 수준의 교육열을 보여주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부터 광복까지 재미교포교육은 주로 항일 구국운동과 자주독립운동으로 이어졌으며, 광복 후 오랜 기간 동안 이들에 대한 민족교육은 이민교포의 세대교체 및 6·25전쟁으로 인하여 본국 국민은 물론 교포자신들에 의해서도 잊혀진 듯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정부에서는 1961년도에는 일본에, 1970년대 초에는 미국·독일·프랑스에 각각 장학관을 파견하였으나, 주일장학관 파견 목적이 재일동포의 민족교육 관장에 있었던 반면 주미장학관의 경우는 재미유학생을 관장하는 것이어서 당시의 대조적인 상황을 나타내주고 있다.
1970년대에 와서 미국지역에 새로운 이민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재미교포의 민족교육문제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1978년 이중언어교육에 관한 미국의 법률이 종전의 부정적 방침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된 정세 발전에 힘입어 모국어 학습을 통한 민족교육중흥이 자주적으로 조성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에 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5년 2월에 로스앤젤레스에 남가주한국학교를 설립하고 1992년 9월에 중·고등학교를 병설하였으나 그후 교명을 윌샤이어(Wilshire)초등학교와 멜로즈(Melrose)중·고등학교로 변경하였으며 초등학교는 157명의 학생수와 17명의 교원으로 정상적인 운영을 하고 있으나 중·고등학교는 학교 위치가 좋지 않고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폭동과 노스리지지진 등의 악재와 함께 교육환경의 열악으로 결국 폐교의 위기를 맡게 되는 불운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재미동포 대부분은 미국계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고 한글교육을 비롯한 민족교육은 주로 867개의 한글학교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학입학수능시험인 SAT(Scholarstic Assessment Test) Ⅱ의 제2외국어 과목에 한국어가 1995년도에 채택되고 1997년도에는 9개 외국어 과목중 3번째로, 1998년도에는 4번째로 지원자가 많아 한국어의 세계적인 보급확산 이외에도 동포자녀들의 대학 진학 여건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캐나다는 이민 역사가 짧으나 초기에 유학생 이민으로 시작하여 제3국을 통한 3국 경유 이민, 가족초청이민, 취업이민, 1980년대의 투자이민으로 동포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역시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3) 중국지역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총 2,043,578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91%가 옛 만주지방인 이른바 동북3성으로 일컬어지는 길림·요령 및 흑룡강의 3개성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일제 침략을 피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건너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민족적 단결과 교육열이 있으나 중국 정부에서는 소수민족 집단 거주지역을 자치주로 정하고 고유 전통문화를 계승하도록 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중화문화로의 동화를 목표로 하고 있고 소수민족 자신들이 스스로 중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임무를 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만주에서 실시된 우리 민족의 신교육은 1906년 이상설(李相卨)이 북간도에 설립한 서전서숙(瑞甸書塾)이 효시라 할 수 있는데, 당시 22명의 학생을 수용하여 독립정신의 고취와 신사조에 따른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 뒤 1920년대에 와서는 순수히 우리 나라 사람에 의하여 설립, 경영된 교육기관이 급증하였는데, 당시 소학교로서 천주교계통 5개교, 예수교계통 14개교, 단군교 계통 3개교, 일반 한인설립 50개교를 합치면 72개교로 총학생수 2,645명이었고, 중학교로는 명동(明東)·은진(恩眞)·영신(永新)·정동(正東)·창동(昌東)·길동(吉東)·동흥(東興)·대성(大成)·신흥(新興)·명신(明信) 등 10개교가 주로 1910∼1922년에 설립, 개교되었다.
그밖의 한인자녀들은 1917년의 기록에 따르면, 중국의 공립학교 중 소학교 25개교에 1,120명, 중학교 2개교에 135명, 일본관헌이 경영하는 학교 중 소학교 3개교에 574명, 중학교 1개교에 19명이 취학하였다.
그러나 그 뒤부터 광복 전까지(1915∼1945) 우리 민족의 교육은 일본의 식민제국주의에 의한 간섭 및 통제로 일본인교장을 강제로 추대하는 등 일본교육의 체제 속으로 강제 편입되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교류가 없었으나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계기로 양국관계가 성큼 다가서면서 1990년 10월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하여 협력의 결실을 맺은 후 1992년 8월 24일 국교를 수립하면서 양국간에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최근 1998년도에 중국에는 26개 대학에 한국어 또는 조선어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한국학 관련 연구소가 15개 대학에 30여개소가 있으며, 우리 조선족의 교육기관으로는 대부분 동북3성에 있는데, 길림성에 546개 소학교에 104,580명, 97개 중학교에 60,469명, 요령성에는 225개 소학교에 19,504명, 31개 중학교에 11,015명, 흑룡강성에 371개 소학교에 35,186명, 81개 중학교에 19,210명, 기타 내몽고와 하북지역을 포함하여 모두 1,158개 소학교에 160,633명, 213개 중학교에 91,154명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다.
또한 16개교의 토요 한글학교에서 1,867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정부와 현지 교민들이 함께 설립한 한국학교는 북경·상해·연변·홍콩 등 4개학교가 있으며 123명의 교원에 750명의 학생수가 재학하고 있다.
(4) 독립국가연합지역
독립국가연합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근세기의 어려운 경제사정에 의해 살길을 찾아갔거나 일제의 침략을 피하여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이주한 동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일제의 징용에 끌려온 동포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 망향의 한을 품으며 어쩔 수 없이 눌러 앉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정권은 일본과의 전쟁시 구분하기 곤란하다는 등의 이유로 민족 대이동 정책을 발표하고 우리 동포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몰아 내었다. 우리 나라와는 오랜 동안 단절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특히 소수 민족 언어교육을 금지하였다가 1980년대 말에 와서야 허용하였으나 한국어를 알고 있는 세대는 주로 60대 이후의 노년층이며 그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더욱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소련 연방체제의 붕괴와 함께 각 국가의 고유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 동포들은 언어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도자적인 일자리에서 점점 밀려나고 잇는 실정이다. 그러나 1990년도 한·러수교 이후부터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고 활발한 외교·통상 관계로 한국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153,400명, 우즈베키스탄에 181,241명, 카자흐스탄에 113,000명, 그리고 키르기르스탄 등 독립국가연합 지역에 모두 486,857명의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모스크바 한국학교에 64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이고, 한국교육원이 블라디보스톡·사할린·하바로프스크·타슈켄트·알마티 등에 5개 교육원이 있으며, 362개의 한글학교에서 17,081명의 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또한 러시아내의 많은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어 다행스런 일이나 우리 동포들이 반세기 동안 조국을 등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말과 글 그리고 전통과 문화와 역사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광활한 러시아에 대해서는 재외 교육기관을 보다 더 확대하여 설치하고 교육공무원을 증원하여 파견하고 각종 교재와 기자재 그리고 전통문화 소품이나 우수 강사를 파견하여야 할 것이다.
(5) 유럽지역
유럽의 한국이민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유럽지역에는 독일 25,699명, 영국 10,846명, 프랑스 10,265명 외에 이탈리아·스페인 등 모두 64,467명의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다.
제1차세계대전 직후에 일제 치하에서 망국의 한을 안고 망명한 극히 소수의 한인들이 영국·프랑스 등지에 있었고,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극소수의 한국유학생들이 있었으나 유럽에 정착해서 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특히 독일에는 광산 근로자와 간호원을 파견하여 동포수가 늘어났으며, 현지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로 볼 때 이민사는 불과 30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외국인 취업자에 대한 사후조치로 무기한 체류허가, 영주권, 시민권의 혜택을 주게 됨에 따라 안정된 교포사회를 구축하게 되었고,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여행사, 요식업 등을 하는 교포들이 급증하였다.
지금은 이 지역에 64,467명의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2세부터 현지인과의 혼인이 늘어나고 있으며, 3세부터는 얼굴 외에 모든 것이 현지인과 완전히 동화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에 한국교육원이 1개원씩 설치되어 있고 원장이 파견되어 있으며 한글학교는 83개교에 4,567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학교는 유학생과 체류자가 많은 독일에서 설립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경제 불황으로 인하여 현지 모금이 되지 않아 추진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6) 중남미지역
지금 남미지역에는 브라질 46,916명, 아르헨티나 31,248명, 파라과이 10,412명 등을 포함하여 전역에 102,806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의 이주는 구한말인 1903년도에 최초로 멕시코 이민을 하였으나 이들은 거의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했으며, 1962년 3월 해외이주법이 제정되면서 우리 이민 사상 최초로 정부 주도하에 계획적인 이민이 추진되면서 당시 우리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하던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많은 이민을 하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미국 등으로 재이민을 하게됨에 따라 이민이 중단되다가 1980년대 초에 다시 이민이 재개되었으나 우리 경제가 중남미 경제를 추월하면서 이민이 격감하게 되었다.
중남미 국가 중 브라질에는 내국인과 거주외국인과 차별을 못하도록 법률로 정해 놓고 있으며 영주권 취득이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포들이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 동포들은 주로 상파울로에 거주하면서 의류산업 및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과거에 유태인들이 하던 분야를 근면한 우리 동포들이 점유함으로써 갈등이 있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천혜의 비옥한 농토와 엄청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과거 세계 5대 강국에 속할 정도로 발전을 이루었던 국가이나 정치적 불안정과 공업화의 지연으로 경제난을 빚고 있으나 우리 상사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어 우리 국적을 가진 체류민들이 자녀를 현지 국제학교에 취학시키고 있다.
파라과이는 자국의 국토개발을 위해 이민 문호를 개방해 놓고 있으나 이민자에 대한 특별한 정책이 없고 경제도 근세기의 최대 불황으로 일용 잡화점 등 소규모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시민권자 취득률이 낮으며, 언젠가는 귀국 또는 제3국으로의 이민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등 정주 성향이 낮은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민을 억제하고 있다.
3개 국가에 한국교육원과 한국학교가 각각 1개교씩 있으며, 3개 한국학교에는 68명의 교원에 475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한글학교는 61개교에 3,718명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 부유층들은 자녀들을 대부분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으나 영세민들은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동포자녀들도 오전엔 사립학교에 그리고 오후엔 한국학교에 다니는 불편이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한국학교에 현지과정을 병행 설치함으로써 오전과 오후에 한국학교에서 현지과정과 국내과정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7) 기타지역
기타 동남아 지역은 필리핀 10,137명, 인도네시아 10,078명, 태국 7,218명, 베트남 5,544명, 싱가포르 4,150명, 대만 3,324명 등 130,243명이 거주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는 사우디아라비아 1,482명, 리비아 1,441명 등 총 6,326명이 거주하고 있고, 대양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44,833명, 뉴질랜드 12,710명 등 57,543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일제시 강제징용, 월남전, 중동붐, 이민 등으로 동남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호주에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자국민 보호정책 때문에 국적 취득이 매우 어려우나 비자 갱신 방법으로 장기 체류자가 많아 1개의 한국학교에 136명의 학생이 있고 1개의 한글학교에 164명이 있다.
대만에는 영주권 제도가 없어 체류허가를 갱신받아 체류하고 있으며 최근 외교관계 단절 후 교류가 과거에 비해 빈번하지는 않고 있으나 2개의 한국학교에 76명의 학생이 있고 2개의 한글학교에 40명의 학생이 수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오랜 식민지 경험 때문에 한인을 포함한 모든 이민족에 대하여 배타적으로 대하고 차별이 심하며 특히 경제권을 장악한 화교에 대한 반감은 뿌리가 깊으며 영주권 발급 절차와 획득 조건이 까다로워 거주할 목적으로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자원이 많아 우리 상사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어 체류민들이 많아 1개 한국학교에 1,392명의 학생수가 재학하고 있으며 2개의 한글학교에 111명의 학생들이 있다.
베트남에는 최근에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으면서 교류가 활발해 많은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어 1998년 8월에 한국학교를 설립하여 현재 143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2개교의 한글학교에 158명의 학생들이 있다.
호주는 1958년도 이민법 개정으로 영어 시험제를 채택한 백호주의를 폐지한 후 1993년도에 이민 쿼터제로 이민을 일정한 범위내에서 허용하고 있어 월남이나 중남미에서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이민간 동포들이 많으며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교민들이 1/3이 되고, 근면성과 교육열은 높으나 한인끼리만 어울리고 있어 현지에 잘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곳엔 한국교육원이 1개소 있고 한글학교가 33개교에 2,454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중동지역에는 1980년대 초 중동 건설공사 붐으로 진출이 활발하였으나 현지의 경제적 사정 등으로 상사들이 많이 철수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5개의 한국학교에 139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고 9개소의 한글학교에 267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재외국민은 본질적으로 현지 적응능력과 조국에의 귀속의식을 동시에 지니게 되므로 그 교육에 있어서도 현지에서의 활동만으로는 목표달성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해외동포 자신들의 필요한 요망이 본국 정부의 정책과 부합되어 본국내에 동포교육의 장이 설치되는 것인데, 1957년 일본의 경도한국학교 임원들로 구성된 모국교육시찰단에 의하여 최초로 그 계기가 마련되었다.
국내 실시의 동포교육도 학교 교육적 분야와 사회 교육적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국내의 학교교육기관인 각 대학이나 고등학교의 학생으로 입학해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하여 학위나 자격 등의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모국유학이 전자에 속하는 것이고, 거주하고 있는 외국에서 학생신분으로 있거나 직업을 가진 동포 자녀들이 단기간의 여가 동안 모국을 방문하여 교육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계획된 교육제도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모국수학생 교육은 3개 과정으로 구분되는데, 첫째, 한국어 장기교육과정으로 초·중등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국내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재외동포자녀를 대상으로 한국어 수준별로 반을 편성하여 9개월간 교육을 실시하는 대학예비교육과정과 둘째, 중졸 이상 40세 이하 한국어 기초습득 및 한국의 문화 이해 희망자를 대상으로 3개월간 교육을 실시하는 단기교육과정이 있고, 셋째, 재외 동포 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10여일 내외동안 실시하는 계절제 교육과정이 있다.
1962년 3월 서울대학교에서 재일동포 모국수학생 지도를 함으로써 모국유학제도가 시작된 이래 1962년부터 1999년까지 모국수학 예비교육과정 대학(원) 수료자는 3개 과정에 총 5,21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이외에도 재외동포자녀들에 대한 교육은 6개 과정에 1999년도까지 27,355명이, 재외동포 관계자 및 학생들의 초청연수는 12개 과정에 11,718명이 교육과 연수를 받았다. 아울러 재외동포 자녀들이 귀국 후 국내 적응을 도와주기 위한 교육과정에 현재까지 1,930명이 교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