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구(車輿具)’라고도 불린다. 재질은 주로 청동이지만 후기가 되면 철제 및 연제품(鉛製品)도 일부 나타난다.
대표적인 종류로는 차형단금구(車衡端金具), 고삐고리[轙], 입형동기(笠形銅器), 차축두(車軸頭), 통형동기(筒形銅器), 乙자형관금구(乙字形管金具), 일산[車蓋] 등이다.
차형단금구는 생김새에 따라 권총형동기(拳銃形銅器)로 불려온 것으로서 차형의 좌우 양끝에 붙여 2개가 1조를 이루며 고삐가 통하는 구멍이 나 있어 고삐고리의 구실도 겸하고 있다. 평안남도 평양 정백리에서 출토된 예로 미루어보아, 권총형 차형단금구를 사용한 마차는 일주이두식(一輈二頭式) 마차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서북한 외의 지역에서는 출토 예가 없는 우리 나라 특유의 마차이다. 고삐고리는 차형상에 붙이는 금구로서 ○형태의 것도 발견되고 있다. 입형동기는 그 형태에 따라 원통형과 나팔형의 두 가지가 출토되고 있다. 이 부품의 정확한 용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원통형의 것을 액수(軛首)의 금구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차축두는 차축의 끝에 끼웠던 것으로서 예(軎)와 이것을 차축에 고정하기 위해 삽입하는 쐐기인 할(轄)로 구성된다. 통형동기는 방울이 달린 것과 달리지 않은 것이 있다. 용도가 확실하지는 않으나 차축두를 덮어씌우는 부속구로 생각된다.
乙자형관금구는 지름 1㎝ 가량의 관의 형태로서 그 내부에 나무를 끼워 2개를 서로 연결해 사용한 것이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일산은 수레 위에 씌웠던 것으로서 그 부속품인 개병(蓋柄)·개두(蓋頭)·개궁료(蓋弓橑)·개궁모(蓋弓帽)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 중 개궁모는 일산의 살대[蓋弓帽] 끝에 끼웠던 금구이며 평양시 정백동 제2호분에서 출토된 개병에는 “永始三年”(영시3년 : 서기전 14년)의 명문이 쓰여져 있어 거여구의 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와 같은 거여구들은 초기철기시대의 묘제(墓制)인 서북한지역의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 또한 남한에서는 대구광역시 평리동과 경상북도 경주시 안계리 등지에서 입형동기 등이 약간량 발견되고 있다.
초기의 거여구들은 우리 나라 고유의 독특한 형식으로서, 한국식 동검·동모 등과 함께 우리 나라 고유의 금속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그러나 낙랑군의 설치와 함께 점차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식(漢式)으로 대체되면서 말기에 이르러서는 명기화(明器化)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