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안계리 고분군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목차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포항제철공업단지의 공업용수 저수댐공사로 인한 수몰지구 유적조사계획에 따라 1970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두 갈래로 뻗은 구릉 위에 200여 기에 이르는 크고 작은 고분들이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고분의 대부분은 심한 도굴로 훼손되어 있었기 때문에 발굴조사는 이 중 비교적 상태가 나은 43기에 대해서만 이루어졌다.

고분은 묘곽의 축조방법에 따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과 돌덧널무덤[石槨墳]으로 나뉜다. 고분의 유형에 따라 고분의 크기나 출토유물의 수량 및 종류에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사회적 신분에 의해 무덤의 구조가 달랐던 것으로 여겨진다.

무덤의 장축은 동서(東西)간에 이루어진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유물의 출토위치로 보아 피장자의 머리는 대부분 동쪽을 향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물의 배치상태에서 주곽 밖에 따로 부곽이 마련된 경우, 주곽 내의 부장구간에는 대개 작은 그릇들이 놓여 있었고 부곽에는 항아리같은 큰 그릇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고분 중에는 봉토의 가장자리를 따라 석렬(石列)이 둘러진 것도 있었다. 이 중 제1호분의 경우, 경사진 주위의 지형에 따라 낮은 쪽만 석렬을 쌓아 봉토가 무너지는 것을 막았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돌무지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간에 차이가 없었다. 또 고분의 위치 등에 따라서도 뚜렷한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 고분군의 축조시기가 그리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부 토기에 나타난 도장무늬토기[印花文土器]의 존재 등으로 보아서는 고분의 축조가 적어도 6세기 중엽까지는 계속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참고문헌

『안계리고분군』(지건길·조유전, 문화재연구소, 1981)
집필자
지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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