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과 1987년에 걸쳐 국립부여박물관과 공주박물관이 합동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모두 9기의 집터가 해발 188m되는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부채꼴을 이루고 있었다. 앞벽이 터진 평면 U자, 단면 L자 모양의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부식된 암반의 석비레를 파내고 만든 집터 안에는 벽면에 연접해 화덕자리[爐址]가 있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바닥의 중앙에 만들어진 다른 지역의 청동기시대 집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각 집터 사이에는 벽이 이루어져 있으나 제2·3·4·5호 집터는 샛벽이 없이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출토토기로는 덧띠토기[粘土帶土器]·목긴검은간토기[黑陶長頸壺]·바리형토기[鉢形土器]·붉은간토기[紅陶]·조합식잡이토기[組合式把手付土器] 등이 있다.
이 중 검은간토기 등 일부 토기는 여기에서 직접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집터 안에서 간토기를 만들 때 표면처리용으로 썼던 흑연덩어리가 출토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덧띠토기는 한강·금강 유역 등 주로 남한지역에서 출토되는데, 이 곳 교성리의 토기에는 덧띠가 토기의 몸체에 밀착되도록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손가락으로 눌러 붙인 흔적이 나타나 있다. 토기의 바닥 가운데는 중앙부분을 눌러 햇무리모양 굽을 만든 것도 있다.
석기로서는 돌도끼[石斧]·홈자귀[有溝石斧]·반달돌칼[半月形石刀]·돌창[石槍]·돌칼[石劍]·돌살촉[石鏃], 숫돌[砥石], 가락바퀴[紡錘車] 등이 출토되었다. 석재는 점판암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석기를 만드는 원석에서부터 반제품·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석기들이 섞여 나와 이 곳에서 토기와 함께 석기도 제작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이 유적의 연대는 검은간토기나 덧띠토기 등의 특징으로 보아 민무늬토기[無文土器]시대의 후기에 해당되는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