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석실분.
내용
남아 있는 북·서 양벽에서는 맨 아랫단에 긴 장대석을 놓고 위로는 네모로 깬돌을 쌓아올렸는데, 서벽에서는 네모난 돌 사이사이에 모양이 고르지 않은 막돌을 채워 두었다.
남아 있는 양벽 중 짧은 벽으로 보이는 북벽은 거의 수직으로 쌓아올렸으나 긴 벽인 서벽은 위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약 10도 가량 기울어지게 쌓아올렸다. 노출될 당시 돌방의 바닥에는 납작한 깬돌들이 깔려 있었다. 돌방 옆에는 1m×2m가량의 넓은 판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은 돌방 위에 얹힌 뚜껑돌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조사 당시 남아 있는 상태로 볼 때, 돌방의 크기는 320㎝×130㎝이고 바닥에서 벽면 위끝까지의 높이는 약 120㎝로서 북쪽에서 15도 가량 서쪽으로 기운 남북 장축의 돌방무덤임을 알 수 있다.
남쪽의 짧은 벽이 제거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돌방의 크기와 남아 있는 긴 벽의 경사로 보아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으로 보인다.
출토상태가 불확실하지만 세발토기[三足土器] 등 7점의 토기, 고리칼[環頭刀]을 비롯한 모두 20여 점에 이르는 철제유물, 금동제가는고리장식[細環飾] 1점 등이 주민들에 의해 수습되었다.
출토유물 중 토기류로는 목없는 항아리[無頸壺] 1점, 토기병(甁) 2점, 세발토기 3점, 뚜껑 1점 등이 있다. 금속기류로는 철제고리칼 1점, 철제널고리[鐵製棺環] 2점, 철제고리못[鐵製環頭釘] 2점, 대갈못[圓頭釘] 15점, 금동제가는고리장식 1점 등이 있다.
참고문헌
- 「보령장현리 백제고분과 출토유물」(지건길, 『백제문화』11,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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