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는 단독으로 혹은 무리를 이루면서 수백 기에 달하는 고인돌이 군집되어 있다. 1958년 저수지 건설사업에 따라 석천산 동쪽 기슭에 분포된 30여 기의 고인돌이 인접된 고구려 봉토분과 함께 전주농(田疇農) 등에 의해 조사되었다.
이 고인돌들은 평지에 가까운 기슭의 경사면에 3, 4기씩이 무리를 이루며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바로 인접된 곳에서는 고인돌의 덮개돌을 떼다 썼다고 생각되는 대규모의 채석장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고인돌군은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된다. 일부 고인돌은 덮개돌 아래에 돌무지[積石] 시설을 갖춘 것도 있었다. 이 중 북방식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발굴조사된 3기만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조사 보고된 2기(제10·12호)의 북방식 고인돌은 모두 각 4매의 판석을 세워 남북장축의 장방형 돌방을 만들었다. 제10호는 1.3m×0.7∼0.8m이며 높이 1.4m이다. 12호는 1.7m×1.2m이며 높이 1.5m이다.
이 중 제10호묘의 돌방 외부에는 돌무지시설이 있었으며, 제12호묘는 돌방의 반 이상이 지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2기 모두 나지막한 모습이었다.
한편, 돌방 내부에도 바닥 위에서부터 돌방 외부의 지면 높이에 이르기까지 잡석과 점토를 규칙적으로 채워둔 상태였다.
특히, 제12호묘의 바닥 위에는 원래의 지표상에 굄돌을 튼튼히 세우기 위한 기초 홈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돌방의 내부 윗면에는 얇은 판석 11매가 전면에 깔려 있는 것이 확인되어 고인돌의 돌방구조로서는 매우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특이한 구조는 판석으로 이루어진 굄돌을 조립시켜 돌방을 구성하고, 그 위에 무거운 덮개돌이 얹혀짐에 따르는 굄돌의 보강책으로 생각된다.
돌방 안에서는 제10호묘로부터 대팻날형석기 1점과 슴베살촉[有莖石鏃] 10점, 제12호묘로부터는 같은 모양의 살촉 4점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