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나루

공주 고마나루
공주 고마나루
교통
지명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금강의 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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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금강의 나루터.
명칭 유래

시내의 서북쪽 4㎞ 지점에 있다. 공주의 옛 이름으로 고마나루라고도 하였다. 이 지명은 그곳에 사는 한 어부가 인근 연미산의 암콤에게 잡혀가 부부의 인연을 맺어 두 명의 자식까지 두었으나, 어부가 그곳을 빠져 나와 도망치자 암콤이 그것을 비관하여 자식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해안 지명의 하나인 ‘ᄀᆞᆷ’지명으로 예맥족의 kue:ma:, 또는 물가[水邊]라는 고어의 ‘ᄀᆞᄅᆞᆷ’에서 유래된 것으로, 일본의 ‘가미(神)’나 ‘고마(高麗)’도 여기서 파생된 음이다. 백제어에는 동물명을 따온 지명이 많은데, 특히 [熊]을 딴 지명이 많고, 곰나루도 한자로는 웅진(熊津) · 웅천(熊川)으로 쓰인다.

형성 및 변천

이 지명에 대한 기록으로 「용비어천가」의 ‘고마ᄂᆞᄅᆞ’, 『일본서기 日本書紀』의 ‘구마나리(久麻那利)’ · ‘구마노리(久麻怒利)’, 『주서 周書』 · 『북사 北史』 · 『양서 梁書』의 ‘고마성(固麻城)’ · ‘고마’ 등이 있다.

백제어에 있어서 신(神)이라는 의미의 ‘ᄀᆞᆷ’이 ‘곰’ · ‘고마’로 바뀌었으며, 이는 ‘겜’ · ‘검’ · ‘곰’ · ‘금’ 등으로도 쓰일 수 있다. 또한 왕의 옛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 구전되는 곰설화는 우리 개국신화인 단군신화와 같이 곰 토템사상을 보여주는데, 백제인이 곰을 신성한 원시 종교의 대상으로 여겼던 민간 신앙적 사유가 보인다.

삼국시대에 이곳을 통하여 중국과 문화를 교류하는 등, 근대적 교통의 발달 이전까지만 하여도 군산 · 강경 등지의 소금 · 건어물 등 지방 특산물이 집산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백제의 개로왕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아 피살되고 수도 한성이 함락되자, 개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문주왕은 천연적 요새지이고 수륙 교통의 요충지인 이곳으로 천도하여 백제가 다시 흥하기를 꾀하였다. 이로써, 문주왕 이후 성왕대까지 64년간 이곳은 백제의 왕도였으나,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한 뒤 당나라에 의하여 도독부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현황

현재 이곳에는 당시 백제의 영화와 숨결을 알려주는 무령왕릉 등 귀중한 유물 · 유적이 산재한다. 또, 아직도 일본에 이와 유사한 지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고대 한일 관계에서 우리 문화, 특히 백제 문화가 끼친 영향을 증명해 준다.

근대적 교통의 발달과 함께 수운을 중심으로 한 이곳의 교통 요지적 기능은 상실되었고, 금강교의 준공(1933.11.)과 더불어 서해안 지구로 통하는 도강(渡江)취락적 기능마저 상실되었다. 그러나 이 일대는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노송의 자연 경관과 함께 많은 국가유산의 보고로서 점차 관광 도시로서의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신증동국여지승람』
『공주군지(公州郡誌)』
『고가연구』(양주동, 박문서관, 1942)
『한국사』 2(국사편찬위원회, 1978)
「백제어의 연구시고」(이숭녕, 『백제연구』 14,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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