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김승범(金昇範)이 창설, 발행하였다. 특정한 외국통신사와 수신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로 외국방송을 청취, 번역해서 내신(內信)과 함께 보도하는 라디오프레스로 시작하여 운영하였다.
사주 김승범이 6·25사변 때 납북됨으로써 자연히 없어졌다. 이 통신은 1945년 12월 말에 개최된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결의된 우리나라 신탁통치안을 『조선통신』 및 『해방통신』과 함께 찬성하였으며, 미군정에 대하여도 비판적이었다.
정판사위조지폐사건(精版社僞造紙幣事件)의 공판을 방해한 혐의로 기자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이 통신사는 군소 통신사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였으나, 광복 직후부터 6·25사변 직전까지 경영주가 바뀌지 않고 같은 제호로 꾸준히 발행된 유일한 통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