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공법과 사법으로 구별하는 것은 소송기술상의 필요에서 고대 로마법에서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근대법에 있어서의 공법과 사법의 구별은 일정한 정치적·사회적 배경하에서 발생한 역사적 제도의 소산이었으므로 국가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성격과 범위를 달리하였다.
특히, 영미법계의 여러 나라들은 행정재판제도가 별도로 없는 것으로 보아 공법과 사법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행정재판제도를 가진 프랑스·독일 등의 대륙법계의 국가들은 공법·사법의 구별을 전제로 하여 재판관할권의 분배를 결정해 왔기 때문에 공법과 사법의 구별은 역사적·상대적인 것으로서 법본질적·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한계가 명백하지 않으며 개념설정에 있어서는 학설의 대립이 있다.
법률관계의 주체가 국가·공공단체 상호간 또는 이들과 개인과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개인 상호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사법이라고 하는 주체설, 공익에 관한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사익에 관한 법을 사법이라고 하는 이익설, 국가통치권의 발동에 관한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개인 상호간의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사법이라고 하는 통치관계설, 권력관계의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대등관계의 법을 사법이라고 하는 법률관계설, 국민의 정치생활을 지배하는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법을 사법이라고 하는 생활관계설 등이 있다.
최근에는 공법과 사법의 공존 또는 융합화의 현상을 중시한 나머지 양자의 구별을 부정하는 학설도 있다. 이상의 학설 가운데 생활관계설이 오늘날의 통설이라고 할 수 있으나, 공법·사법의 구별은 결국 개별 법규를 보고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법체계상의 분류로는 헌법·행정법·형법·소송법·국제법 등은 공법에, 민법·상법 등은 사법에 속한다. 협의의 공법이라고 하면 헌법과 행정법만을 가리키지만, 노동법·경제법·사회보장법 등과 같이 본래 사법이었던 것이 사회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법화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의 것도 있다.
우리 나라에 처음 서구적 공법사상과 이론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의 한말이었다. 즉, 개화파의 갑신정변에 의한 <갑신정령 甲申政令>(1884) 14개 조와 이노우에(井上)의 <한성준잔몽 漢城遒殘夢>(1891) 및 <혁신강령 革新綱領>의 내용이 담긴 <강연속기 講演速記>, 갑오경장(1894)에 의한 <홍범십사조 洪範十四條> 등이 그것이다. 이들 내용과 체제는 비록 군정에 관계된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적 유교사상을 벗어나 서구적인 정치법률사상으로 개혁한 것으로서, 오늘날의 국민주권주의적 공법사상에 뿌리가 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자주독립의 주권국가로서의 법 앞의 평등, 군민공치(君民共治)의 내각의결정치, 관제개혁, 국고재정일원화, 군제 및 세제정비, 관기확립 등 오늘날의 민주적 헌법사상이 담겨 있다.
한편, 개화기에 발간된 영미공법이론의 저서로는 휘턴(Wheaton,M.)의 ≪만국공법≫(1836)과 울시(Woolsey,T.D.)의 ≪공법편람≫(1866) 등이 있으며,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을 통하여서 서구의 민권적 공법사상과 이론이 도입되었다. 또한, 독일의 블룬츨리(Bluntschli,T.C.)의 ≪공법회통≫(1880)을 번역하여 당시 정부요인들에게 배포, 구독하게 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근대화 과정에서 법관양성소(1895) 설치로 공법과목이 강의되었고, 보성전문학교(1905)의 교과 과정에도 공법과목이 있어 우리 나라 공법교육의 시원적 역할을 하였다. 1925년 경성제국대학에 법문학부가 설립되고, 일제치하라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하에서도 보성전문학교 등에서 한국인 법학자들이 법학관계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였다.
8·15광복 후 유진오(兪鎭午)가 건국헌법안의 기초 등 주도적으로 법학계를 이끌었다. 1957년 7월 한국공법학회(초대 회장 유진오)가 창립된 뒤 1970년부터 ≪공법연구≫가 간행되었다가 중단, 1994년부터 다시 활성화 되었다. 그리고 1972년 한국행정과학연구소(金道昶)가 ≪행정판례집≫을 출간하였다.
그 뒤 1989년 미국헌법연구소(文鴻柱), 1990년 아시아·태평양공법학회(초대 회장 具秉朔), 1991년 한국헌법연구소(金哲洙) 및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김철수), 1991년 아시아공법연구소(具秉朔), 1996년 한국행정법연구소(徐元宇) 등이 설립되어 연구에 활기를 띠고 있다.
또한, 1993년부터 헌법재판소에서 많은 판례와 농촌 등 연구 업적이 솟아져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판례와 연구기관에서 연구 논문집의 발행과 저서 출판, 국내외학술회의 개최 등 선진화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