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전법에서 국가적인 법제로 정착되었던 상·중·하의 3등전품(三等田品)에 따른 양전제(量田制)와 전세제도(田稅制度)는 제도 자체의 운영 과정에서 많은 결함이 드러났다.
따라서, 1428년부터 전세제도의 전면 개혁을 위하여 공법이라는 새로운 정액세법(定額稅法)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1430년 전국 관민의 여론을 수렴해 그 가부를 논의하였다. 1436년에는 당시 영의정 황희(黃喜) 등에게 「공법절목(貢法節目)」을 마련하게 하였다.
즉, 「공법절목」은 장차 정액 세법인 공법을 수립함에 있어서 그 최초의 기준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1436년 윤6월 이를 기준으로 구체적인 공법의 내용을 논의하기 위하여 공법상정소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규모는 전혀 알 수가 없으며, 이름마저 다시는 사료 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뒤 공법을 상정한 주관 기구가 의정부와 호조였던 것으로 보아, 이 두 정부 기관의 관원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법절목」은 이 두 기관의 심의를 거쳐 다시 상정되었는데, 1437년 7월의 「상정공법(詳定貢法)」이 그것이다. 이 「상정공법」은 그대로 시행되지 못했으나, 그 골격은 1440년의 수정공법에 이르기까지 기본 준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1443년 11월 이른바 갱정공법(更定貢法)이 마련되어 12월 개혁을 담당할 새로운 기구로서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가 설치되었다.
그 결과, 대군과 중신들을 그 주요 구성원으로 삼게 되어 공법상정소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444년 다시 결부제를 바탕으로 하고, 전분육등·연분구등을 근간으로 하는 공법이 새로운 전제상정소의 주관 아래 추진되었다.
공법상정소가 마련한 「상정공법」의 탄생으로, 우리 나라 최초로 정액 세법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