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상하 2책. 민용호는 1896년 1월 의병을 일으킨 이후 의병항전 전기간에 걸쳐 그때 그때의 일들을 단편적으로 기록하여 놓았으나, 이 기록은 1896년 3월 원산진공작전중 분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계속 기록을 남겨 삼척·양구에 보관하여 두었다.
민용호는 이 기록을 토대로 의병항전 후 태천의 장수재(藏修齋)에 머무르던 1897년 전반기에 박동흠(朴東欽)과 함께 이 책을 편찬하였다.
박동흠이 이 때 그 서명을 ‘존주대의록(尊周大義錄)’으로 할 것을 주장한 까닭에 현존하는 필사 원본의 표제는 상·하권 모두 ‘존주록(尊周錄)’으로 되어 있고, 그 가운데 상권에만 ‘관동창의록(關東倡義錄)’이 함께 씌어 있다.
상권은 1895년 을미사변 직후 의병을 일으킨 때부터 1896년 2월까지, 하권은 1896년 3월부터 같은 해 11월 의병 해산 후 중국 망명 초기까지의 내용이 각각 기록되어 있다. 반드시 일기식으로 기술된 것은 아니나, 대체로 월별로 묶어 날짜순으로 기록하였다.
내용은 1896년 1월 처음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정황에서부터 강릉을 향해 동진하며 박동의(朴東儀)·강우서(姜禹瑞) 등의 인재와 군세를 모으던 사실, 강릉 점령시 토착 세력과의 갈등과 연합 과정, 원산진공작전, 군권쟁탈전의 성격이 내재된 이병채(李秉埰)·권인하(權仁夏) 모반사건, 의진의 북상과 해산 등에 이르기까지 1896년 8월까지 지속했던 강릉의병의 활동 전모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제천의병과 강릉의병이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 민용호로부터 함경도소모장에 임명된 최문환(崔文煥)이 함흥에서 활동한 내용, 비교적 그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태백산맥을 낀 영동 각지의 의병항전 상황 등을 기술한 대목이 주목된다.
또한, 하권 중에는 의병기록으로서는 드물게, 조선의 문물제도가 번성함을 칭송하고, 일제 침략으로 인한 국가 변란을 탄식하며 온 국민이 일치 단결하여 국권을 회복할 것을 주장한, 120여 행에 달하는 장편의 국한혼용 가사 「회심가(回心歌)」가 수록되어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 책은 저자가 의병항전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서 활동한 내용을 기술한 『서정일기(西征日記)』, 귀국 후 상무사에서의 활동 내용인 『강북일기(江北日記)』와 함께 그의 3대 저작 가운데 하나이다. 원본은 독립기념관에 있으며, 같은 서명으로 1984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총서 제30권으로 번각 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