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은 김병두(金炳斗). 황해도 신천 출신.
어려서 서울로 올라와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였다. 1915년 5월 중국 상해로 망명,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를 졸업하고 중국군으로 복무, 방공총감부(防空總監部) 과장을 거쳐 1941년 구이양항공대대(貴陽航空大隊)에서 상교(上校)로 복무하였다.
1921년 12월 난징[南京] 한족회(韓族會)에서 함께 활동하던 손두환(孫斗煥)과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인 동지를 모으면서 기관지 『신조선(新朝鮮)』을 발행, 자파 세력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상해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한인구락부를 조직하고자 발기취지서를 작성하였으며, 19명의 발기인 가운데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1935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김원봉(金元鳳)이 주도하여 창당한 민족혁명당이 참여하자, 세력을 확대해 활동을 강화할 목적으로 임시정부가 충칭[重慶]에서 1943년 2월에 개최한 제7차전당대회에서 16명의 중앙집행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1942년 10월 임시정부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황해도대표의원으로 뽑혀서 광복 때까지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임시정부의 교통부차장을 겸직하였고, 1944년 12월 다시 참모차장에 임명되어 유동열(柳東說) 참모총장 밑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2월 7일 충칭에서 한국독립당의 지도층에 불만을 품은 홍진(洪震)·유동열 등이 일부 조선민족혁명당원 등과 합작, 신한민주당(新韓民主黨)을 창당할 때 14명의 중앙집행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