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의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합자 형식으로 만들었으나 1914년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경영되었던 듯하다.
본래는 고국에서 주로 경영할 계획이었으나, 세태가 변하고 경영상 이점이 많은 캘리포니아주정부의 법인허가를 얻어 미국에서 본격적인 경영에 착수하였다. 단장에 오운, 금리원에 유명선·이영서, 서기에 염달욱, 검사원에 김영희 등을 비롯해 29명의 단원이 있었다.
1914년 4월에는 1만원, 같은 해 7월까지는 3만원의 자본금을 모아 경영에 들어갔다. 과수원·채소원·목축장·식료품점·요리점 등을 투자업종으로 잡았고, 플로리다주의 잭슨빌 부근을 투자 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에 따라 오운은 토지를 사들이기 위해 같은 해 9월 15일 플로리다 지방으로 출발, 그 시찰소식을 ≪신한민보≫에 연재하였다.
1915년 2월 초순 뉴올리언스항 부근의 농지 200에이커(약 81만m2)를 사들여 채소재배를 시작하고, 같은 해 5월 20일 ≪신한민보≫ 1면 전면에 농원사진과 함께 대대적인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에 따르면, 1911년 3월 이미 제1농원을 개시하였는데, 그 사무소는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6리 11통 5호’라 하여 본국에서 경영하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 제2농원은 미국 ‘류주오항 근처 용림동’에 사무소를 두었다고 하였고, 상업사무소 역시 ‘오항우함 1408’이라 밝히고 있다.
제2농원 개시일은 1915년 2월이고, 요리점은 1915년 12월에, 식료품점은 1916년 4월에 각각 개시할 예정이라고 사업의 정도를 밝히면서 20명의 농원인부를 모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활발하게 전개되던 사업이,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실패로 돌아가 해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