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경(玄正卿)·현익철(玄益哲)·이시열(李時說)·이호원(李浩源)·김석손(金錫巽)·홍원경(洪元京) 등이 국내에서 건너온 장명환(張明煥)·김관성(金觀聲)·이춘산(李春山)·김태호(金泰浩)·박정호(朴正鎬) 등 40여명과 함께 1920년 2월 만주의 관전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에서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전국 208개군의 각 면에 기관을 두고 동지를 배치하여, 폭탄과 단총으로 조선총독부 군사기관·행정기관의 파괴와 조선총독부 주구들의 박멸에 힘썼다. 조직은 중앙위원회 위원장에 현정경, 부위원장에 김이대(金履大), 검무위원장에 김관성, 계획위원장에 이시열, 비서에 고할신[高轄信, 일명:고활신(高豁信)] 등이었다.
이들은 신진 지식인층으로 구성되어 전원위원제(全員委員制)를 채택하였으며, 단원간의 정의적(情誼的)인 친목을 가장 중시하여 평등한 지위를 지님으로써 단원간의 불평이 없었다. 1920년 11월 장명환·김관성 등이 모험대를 조직, 국내에 진입하여 격문을 배포하는 등 평안도와 황해도 등지에서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 1922년 1월 환인현(桓仁縣) 하구(河溝)에서 광복군총영·대한독립단·한교민단(韓僑民團)·대한청년단연합회 등의 대표가 회합하여 남만통일회(南滿統一會)를 조직하여 통합을 추진하였다.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새로운 통합조직인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조직하였고 광한단 역시 통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