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정의부에서 군자금 모금 및 밀정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김봉수(金奉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2년(고종 39)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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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정의부에서 군자금 모금 및 밀정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김봉수(金奉秀).  평안북도 의주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생활이 곤란하여 1918년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4년 관전현(寬甸縣) 화수구(華樹溝)에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 무장항일운동에 전력하였다.

1928년 7월 장기천(張基千)·홍학순(洪學淳)·이근수(李根秀) 등과 같이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의주군 가산면 방산동의 계용수(桂龍守) 집에 도착하여 군자금을 징수하고, 일본경찰의 밀정인 계용수의 장남 계승호(桂承浩)와 삼림간수 강영화(姜榮化)를 붙잡아 처형하였다.

같은 해 8월 용만금용조합과 식산은행 의주지점을 습격하였다. 1929년에 체포되어 6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 복역하였고, 1937년 12월 가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기려수필(騎驢隨筆)』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일제침략하 한국삼십육년사』 8(국사편찬위원회, 1973)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회, 1971)
『한국독립운동사』 4(국사편찬위원회,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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