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봉수(金奉秀). 평안북도 의주 출신.
생활이 곤란하여 1918년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4년 관전현(寬甸縣) 화수구(華樹溝)에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 무장항일운동에 전력하였다.
1928년 7월 장기천(張基千)·홍학순(洪學淳)·이근수(李根秀) 등과 같이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의주군 가산면 방산동의 계용수(桂龍守) 집에 도착하여 군자금을 징수하고, 일본경찰의 밀정인 계용수의 장남 계승호(桂承浩)와 삼림간수 강영화(姜榮化)를 붙잡아 처형하였다.
같은 해 8월 용만금용조합과 식산은행 의주지점을 습격하였다. 1929년에 체포되어 6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 복역하였고, 1937년 12월 가출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