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모험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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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단체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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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내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 협조하고, 무장 항일 투쟁을 위한 화약 제조를 목적으로 1919년 6월에 조직되었다. 단장에 김성근(金聲根), 참모 부장에 김태연(金泰淵), 서무 부장에 이영렬(李英烈), 기술 부장에 황일청(黃一淸) 등과 단원 24명으로 구성되었다.

독립 쟁취의 지름길은 무력 투쟁 밖에 없다는 신조로, 주로 폭탄 제조 및 사용법을 습득하여 국내 각지에 있는 조선총독부의 관서 파괴, 주요 인물 암살 등의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본거지 없이 활약하였다.

그리고 국내 각지와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만주 등지에 있는 모험단과 유기적 전략 전개를 계획하였다. 군자금 조달은 단원들이 각지에서 민중들을 대상으로 징발하는 한편, 국내외 한인 부호들로부터 갹출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런데 심양(瀋陽)에서 이칠결사대(二七決死隊)의 이석(李錫) 등이 폭탄 1백개를 제조하여 국내로 밀반입시키는 계획을 추진하던 중 화약 폭발 사고로 단체의 활동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 뒤 이석은 상해로 망명하여 이영운(李英雲)·이한산(李韓山)·김공집(金公輯) 등과 다시 폭탄 제조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 때 단장 김성근이 그를 초청하여 간부로 임명하고, 그에게 폭탄 제조 기술자의 양성과 폭탄 제조에 주력해 줄것을 부탁하였는데, 그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여 단체의 사업을 활성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 뒤 1920년 4월 29일 폭탄 제조 기술자 임득상(林得上) 등의 실수로 일어난 폭발 사고로 인해, 김성근의 부인, 유치근(兪致根)의 부인, 이규호(李圭鎬)·김홍식(金弘植) 등 4명이 잡히기도 하였다.

한편, 단원들이 국내 각지에서 활동하며, 지방 유지·재산가·학교·종교 단체 등으로부터 독립 운동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에 보고함으로써 당시 국내외 독립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조일문, 애국동지원호회, 1956)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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