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정례』는 1870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주도로 편찬한 대군·왕자군·적왕손·왕손의 교육 관련 의례서이다. 서문은 대원군이 작성하였고, 본문은 설청, 초기식, 절목식, 사부상견의, 상시교학의, 상시접견의, 고례 순으로 되어 있다. 고종 대 왕실 교육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1책, 주1(印本)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교학정례』를 편찬한 것은 손자 완화군(完和君)을 염두에 둔 때문으로 보인다. 완화군은 고종과 귀인(貴人) 이씨(李氏)의 소생으로서 왕실에서는 대군이 아니라 왕자군에 해당하고, 당시 나이가 4세였다. 이 점을 감안하면, 『교학정례』는 왕자군인 완화군을 위해 공식적인 교육기구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교학정례』를 근거로 완화군을 위한 강학청이 설치되어 1876~1878년 3년 간 교육이 이루어졌고, 그것에 관한 기록이 『강학청일기(講學廳日記)』로 전해진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서문을 작성하였고, 이하 본문은 설청(設廳), 초기식(草記式), 절목식(節目式), 사부상견의(師傅相見儀), 상시교학의(常時敎學儀), 상시접견의(常時接見儀), 고례(古例) 순으로 되어 있다. 서문에 의하면, 『교학정례』는 그 동안 여러 환난이 발생하여 종친부(宗親府)에 대군(大君) 이하 종실 자제의 교육에 관한 의절(儀節)이 남아 있지 않아 새롭게 편찬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때 참고한 자료는 「영종정축왕손교부상견일기(英宗丁丑王孫敎傅相見日記)」, 『오례의(五禮儀)』, 『문헌비고(文獻備考)』 등이다.
설청은 대군 이하 종실 자제의 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규정이 제시되어 있다. 세부적으로는 교육 시작 연령, 교관, 담당기구, 상견례의 주요 사항에 관한 내용이다. 교육 시작 연령은 대군 이하 모두 6세로 동일하지만, 나머지는 대군 · 왕자군과 왕손[적왕손 · 왕손]별로 차이가 있다. 대군 · 왕자군의 경우 교관을 사부(師傅)라 하고, 담당기구를 강학청(講學廳)이라 하지만, 왕손[적왕손 · 왕손]의 경우는 교관을 교부(敎傅)라 하고, 담당기구를 교학청(敎學廳)이라 한다. 상견례의 주요 사항은 택일(擇日), 강책(講冊), 집사(執事)에 관한 것인데, 특히 각종 집사의 직책과 역할에 관해 상술되어 있다.
초기식과 절목식은 일종의 보고 양식으로서, 초기식에는 상견례일, 강책, 집사 차출을 결정할 때 보고하는 양식이 제시되어 있고, 절목식에는 상견례 절목의 보고 양식이 제시되어 있다. 사부상견의, 상시교학의, 상시접견의는 사례별 의례 절차를 제시한 부분으로서, 사부상견의는 상견례 당일의 의례, 상시교학의는 평소 강학할 때의 의례, 그리고 상시접견의는 평소에 사부와 접견할 때의 의례를 수록하고 있다.
마지막 고례는 ‘왕손교부상견례(王孫敎傅相見禮)’라는 제목 하에 영조 대에 시행한 2차례의 상견례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첫째는 1757년(영조 33) 은언군(恩彦君)에 관한 기록이고 둘째는 1758년(영조 34) 그의 동생 은신군(恩信君)에 관한 기록인데, 이것이 『교학정례』 서문에서 언급한 「영종정축왕손교부상견일기」이다.
대군 이하 왕실 자제의 교육에 관한 의례서로서, 조선 후기 특히 고종 대의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고종의 서자 완화군의 교육일기인 『강학청일기』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