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규제」는 1659년 2월 성균관 좨주 송준길이 효종의 명에 의하여 작성한 교육정상화 종합 방안이다. 주요 내용은 사부학당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이외에도 한성의 동몽교관 증원, 지방의 동몽교육 장려, 생원진사시의 조흘강 규정 강화 등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 이후 「사학규제」는 사부학당은 물론 한성과 지방의 동몽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인조~효종 대의 교육정책을 재검토하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사부학당을 비롯하여 한성과 지방의 동몽교육을 정상화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사학규제」가 마련되는 시발점은 1658년(효종 9) 12월 17일의 소대(召對)에서 송시열(宋時烈)이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원하고 사부학당 유생의 수재(守齋) 규정을 폐지하자고 제안하면서부터였다. 효종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당시 성균관 좨주를 맡은 송준길에게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하였고, 1659년(효종 10) 2월 16일에 예조판서 홍명하(洪命夏), 동지관사(同知館事) 조형(趙珩), 대사성(大司成) 이정기(李廷夔) 등과 협의하여 최종 방안을 제출하였다.
이 방안의 주요 내용은 사부학당 운영 개선, 한성의 동몽교관 증원, 지방의 동몽교육 강화, 그리고 기타 조항으로 구분된다. 첫째로 사부학당의 운영과 관련해서는 효종 초부터 추진된 사부학당 유생의 수재 규정을 폐지하고, 그 대신 기존에 시행되던 각종 과시(課試) 즉 윤차(輪次), 윤강(輪講), 사학 공도회(公都會) 등을 사학합제(四學合製)로 통합하여 한층 강화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지방의 공도회(公都會)도 운영 규정도 개선하였다.
둘째로 한성의 동몽교관 증원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동몽교관 4인, 분교관(分敎官) 4인의 체제를 동몽교관 8인으로 변경하고, 추가로 도성 밖 삼강(三江) 지역에 분교관 2인을 배속시킴으로써 동몽교육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셋째로 지방의 동몽교육 강화와 관련해서는 각 군현의 하위 행정지역에 훈장(訓長)을 임명하고, 수령(守令), 감사(監司), 도사(都事), 교양관(敎養官) 등이 수시로 교육을 장려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교육의 성과가 현저한 훈장은 동몽교관이나 기타 관직에 임명하는 통로를 마련함으로써, 한성과 지방 사이에 교관 인사제도의 연계성을 고려하기도 하였다.
넷째로 기타 조항에서는 생원·진사시의 조흘강(照訖講) 규정을 강화하고, 성균관과 사학 유생에 대한 공천(公薦) 규정을 개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학규제」는 인조~효종 대에 추진한 교육정책의 효과를 점검하여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규정을 계기로 사부학당과 지방의 과시 제도가 새롭게 정비되어 조선 말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나머지 조항들도 이후에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다. 이점에서 「사학규제」는 조선 후기의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