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경타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로부터 과제발신이 본의 아님을 깨닫고 이황(李滉)의 언행록을 탐독,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1683년(숙종 9)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상을 당하여 곡반(哭班)에 참여했고, 집에 단을 설치하여 삭망(朔望)으로 망곡례(望哭禮: 곡을 할 자리에 가지 못하고 그쪽을 향하여 애곡하는 것)를 행하였다.
1689년 남인들의 무함(誣陷)으로 이이(李珥) · 성혼(成渾)이 출향(黜享: 문묘 배향을 거두어 치움)되었는데, 1694년 정국이 다시 반전되자 기호유생의 소수(疏首)가 되어 복향(復享)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려 성사시켰다.
그리고 또 김장생(金長生)의 문묘배향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저술이 많았으나 중간에 불타버리고 남은 문적을 모아 엮은 『경타재문집(警惰齋文集)』 4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 『경타재문집(警惰齋文集)』
주석
-
주1
: 구용징 저술 : 『경타재문집(警惰齋文集)』(영남대학교 도서관 古南 810.819-구용징)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