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징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경타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경타재(警惰齋)
  • 대현(大見)
인물/전통 인물
  • 본관능성(綾城)
  • 사망 연도1715년(숙종 41)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58년(효종 9)
  • 출생지무태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민식 (한학자)
  • 최종수정 2025년 06월 16일
경타재문집 미디어 정보

경타재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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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경타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대현(大見), 호는 경타재(警惰齋). 무태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구시웅(具時雄)이며, 어머니는 옥천전씨(沃川全氏) 진사 전유익(全有翼)의 딸이다.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재예가 있어 12세에 이미 시부를 지었고, 16세에는 복시에 출제되는 시제(詩題)로 배율(排律) 20운(韻)을 지어 주위로부터 천재라 일컬어졌다. 이어 대소향시(大小鄕試)에 16번이나 합격했으나 결국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그 뒤로부터 과제발신이 본의 아님을 깨닫고 이황(李滉)의 언행록을 탐독,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1683년(숙종 9)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상을 당하여 곡반(哭班)에 참여했고, 집에 단을 설치하여 삭망(朔望)으로 망곡례(望哭禮: 곡을 할 자리에 가지 못하고 그쪽을 향하여 애곡하는 것)를 행하였다.

1689년 남인들의 무함(誣陷)으로 이이(李珥) · 성혼(成渾)이 출향(黜享: 문묘 배향을 거두어 치움)되었는데, 1694년 정국이 다시 반전되자 기호유생의 소수(疏首)가 되어 복향(復享)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려 성사시켰다.

그리고 또 김장생(金長生)의 문묘배향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저술이 많았으나 중간에 불타버리고 남은 문적을 모아 엮은 『경타재문집(警惰齋文集)』 4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 - 『경타재문집(警惰齋文集)』

주석

  • 주1

    : 구용징 저술 : 『경타재문집(警惰齋文集)』(영남대학교 도서관 古南 810.819-구용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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