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저축주식회사의 후신으로, 1911년에 공포된 「조선회사령」의 규정에 따라 우리 나라 최초 민족계 지방은행으로 설립되었다. 이 은행의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구포의 지주출신인 윤상은(尹相殷)과, 물상객주로서 쌀의 대일수출로 재산을 모은 장우석(張禹錫)이었다.
1911년 「조선회사령」의 공포로 구포저축주식회사가 예금업무를 취급할 수 없게 되자, 240명의 주주와 자본금 50만원인 구포은행으로 개편하였다.
개편과 동시에 자본구성의 기본골격도 다소의 변동이 있었는데, 이는 윤상은과 장우석 외에 부산에 거주하는 이규직(李圭直)을 비롯한 거상들과 극히 소수이기는 하나 일본 상공인들에게도 출자를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구포은행은 민족계 지방은행으로서의 자부심에 약간의 손상은 입었으나, 최고경영진인 두취(頭取 : 은행장)에 이규직, 전무에 장우석, 감사역에 윤상은 등으로 구성함으로써 민족계 은행의 구실을 다하였다.
이 은행이 지방 소읍인 구포에 설립된 것은 구포가 윤상은과 장우석을 비롯한 관련인사들의 출생지였으며, 구포저축주식회사의 소재지였고, 당시 낙동강일대가 물자집산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부선의 개통과 더불어 낙동강이 물자수송로로서의 구실이 감소됨에 따라, 구포도 물자집산지로서의 지위가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구포은행도 1915년에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함으로써 경남은행으로 변경되었고, 경남은행의 구포지점으로 격하되었다. → 경남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