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금산전투와 진주성전투에서 활약하다가 진주성이 함락되자 자결한 학자·의병.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주장인 고경명이 전사한 후 우의병장 최경회(崔慶會)를 보좌하여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 황간 · 영동 · 금산 · 무주 등지에서 적과 싸웠다.
그 이듬 해 최경회와 함께 진주성에 합류, 김천일(金千鎰) · 고종후(高從厚) · 황진(黃進) 등 여러 의병장과 합세하여 적과 싸우다가 6월 29일 성이 함락되자 주장 최경회, 문홍헌(文弘獻)과 함께 강물에 투신자살했다. 그는 시를 잘하여 싸움터에서 쓴 진중시(陣中詩)를 많이 남겼다.
또한, 평소 효심과 우애가 남달리 강하여 이를 나타내는 시문이 몇 편 전한다. 그의 부인은 담양전씨(潭陽田氏)로 장인인 전용관(田用灌)도 금산싸움에서 전사하였다.
1625년(인조 3)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에 추증되고, 숙종 때에는 정려가 내려지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되었으며, 1860년(철종 11)에 다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능주(綾州)의 포충사(褒忠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청계집(淸溪集)』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청계집(淸溪集)』
주석
-
주1
: 구희 저술 : 『청계집(淸溪集)』 (전북대학교 도서관 811.0819-구희ㅊ-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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