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경성부민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인물/전통 인물
  • 본관미상
  • 사망 연도1592년(선조 25)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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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경성부민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생애 및 활동사항

본시 전주에 살다가 죄를 지어 회령으로 유배되었다. 뒤에 회령부의 아전으로 들어가 재산을 모았으나, 조정에 대해서 원한이 많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加藤淸正]가 함경도로 침입하여 회령 가까이에 이르자 경성부의 아전으로 있던 작은아버지 국세필(鞠世弼), 명천아전 정말수(鄭末守) 등과 함께 부민을 선동, 반란을 일으켰다.

이 때 근왕병(勤王兵: 왕을 측근에서 호위하는 병사) 모집차 이 곳에 머무르고 있던 선조의 두 왕자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과 순화군(順和君) 이보 및 그들을 호종하였던 대신 김귀영(金貴榮)과 황정욱(黃廷彧) · 황혁(黃赫) 부자, 남병사(南兵使) 이영(李瑛), 부사 문몽헌(文夢軒), 온성부사 이수(李銖) 등을 그 가족과 함께 잡아 적진에 넘겼다.

이에 가토에 의하여 판형사제북로(判刑使制北路)에 임명되어 회령을 통치하면서 이언우(李彦祐) · 전언국(田彦國) 등과 함께 횡포를 자행하다가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의 격문을 받은 회령유생 신세준(申世俊)과 오윤적(吳允迪)의 유인에 떨어져 붙잡혀 참살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북관지(北關誌)』

  • - 「임진왜란 중 민간반란에 대하여」(이장희, 『향토서울 32』, 1968)

주석

  • 주1

    : 국경인 참살 : 『선조수정실록』 26권, 1592년(선조 25) 10월 1일. "북도 평사 정문부가 길주의 적병을 패배시키고 성을 포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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