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판서, 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도이(道以)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0년(숙종 36)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공주(公州)
주요 관직
판서|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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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판서, 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도이(道以). 공주 출신. 권전(權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령(掌令) 권양(權讓), 아버지는 호조판서 권업, 어머니는 주1

생애 및 활동사항

1757년(영조 33) 주2에 병과로 급제, 정언이 되고 이어서 시독관(侍讀官)을 거쳐 세자책봉사(世子冊封使)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61년 대사간에 오른 뒤 승지를 거쳐 1763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그러나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가 해남현감으로 출송되었다.

이듬해 다시 대사간에 기용되었는데 구양수(歐陽修)의 말을 인용, 군주는 난언(難言)을 항시 들으려 해야 감추어진 사정(私情)을 없앨 수 있음을 간하고, 또 태묘축책(太廟祝冊: 종묘에 신위되는 것을 축하는 글)에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지 말 것을 주장하다 주3

곧 승지로 기용되었다가 영조의 비위에 거슬리는 소를 올린 헌납 황최언(黃最彦)을 제지하지 못한 책임으로 평해군수로 출송되었다. 1765년 다시 이조참의가 되고 대사성을 거쳐 1771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이 때 순천의 세선(稅船)이 충청도 연안에 이르러 선원들이 민가를 약탈하자 조정에 보고해 이들을 모두 효수에 처하도록 했다. 이듬해 대사헌, 1776년 이조참판 · 예문관제학 · 관상감제조, 이듬해 한성판윤 ·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1778년(정조 2) 공조판서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예조판서 · 우참찬 · 병조판서 · 좌참찬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780년 치사(致仕)를 청했다. 그러나 정조는 아직도 근력이 강장함을 들어 만약 이를 허락한다면 조정에 나이 많은 대신들이 모두 뒤따를 것을 우려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듬해 다시 한성판윤 · 우참찬, 1782년 지경연사, 1788년 다시 공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주1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2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3

청나라 연호 반대 및 파직 : 『영조실록』 103권, 1764년(영조 40) 1월 16일. "대사헌 김선행과 대사간 권도를 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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