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초(子初).
1417년(태종 17) 주1에 급제한 뒤 판사복(判司僕) · 판통례(判通禮)를 거쳐 1432년(세종 14) 병조참의가 되었다.
1433년에 호조참의가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근래 파저강(婆猪江) 주변의 야인들이 세력을 규합, 강계(江界) · 여연(閭延) 등지로 빈번히 침입하여 군민을 살해하고 재산을 약탈하므로, 이들을 정벌한 사실과 이때 사로잡은 사람들 가운데 중국인 남녀 22인을 요동도사(遼東都司)에게 인계한 사실 등을 주2
1434년 이조참의 · 중추원부사를 거쳐 강계도호부사 겸 절제사가 되었는데, 이듬해 관하 만포구자(滿浦口子)를 순시하던 중 낭떠러지에서 바위가 굴러떨어져 이에 맞아 순직하였다. 본래 힘이 세었고, 특히 활을 잘 쏘았으며, 셋째아들인 권공(權恭)은 태종의 딸 숙근옹주(淑謹翁主)와 혼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