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무명옹(無名翁)·천남거사(泉南居士). 서울 출생. 할아버지는 집의(執義)권격(權格), 아버지는 증 이조참판권상명(權尙明), 어머니는 용인 이씨(龍仁李氏)로 좌의정이세백(李世白)의 딸이다. 아우는 대사간 권영(權瑩)이다. 큰아버지는 학자 권상하(權尙夏), 작은아버지는 이조판서권상유(權尙遊)다.
1686년(숙종 12) 16세의 나이로 경주 이씨(慶州李氏)이조참판이세필(李世弼)의 딸과 혼인하였다. 14세인 1684년(숙종 10)에 아버지와 사별했기 때문에 큰아버지의 각별한 보살핌과 훈도를 받으며 수학하는 한편, 외숙인 영의정이의현(李宜顯), 처남인 좌의정이태좌(李台佐) 등과 함께 면학하기도 하였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때는 19세로 소두[疏頭 : 연명(連名)하여 올린 상소문에서 맨 먼저 이름을 적은 사람]가 되어 소를 올리는 등 한때 시사에 관심을 갖기도 했으나, 송시열(宋時烈)을 위시한 주변 인물들의 사사(賜死) 또는 유배의 참극을 겪은 뒤, 관계(官界) 진출의 길보다는 문필 쪽을 택하였다. 일생을 전국 방방곡곡 명승지를 찾아 탐승(探勝) 여행을 하며 보고 겪은 바를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따라서 그의 작품 세계는 내용이 다양하고 사실적이며 깊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문필 유산 가운데에는 한시·시조·가사 작품 외에도 유행록(遊行錄)·기몽설(記夢說) 등이 있어 그 내용이 광범위하고 섬세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시만 해도 방대한 양을 남기고 있어 오늘날 전해진 것만도 한시 3,000여 수, 시조 75수, 가사 2편이 된다. 시조 75수 중에는 연시조가 많은 편이다.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는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櫂歌)」와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맥을 이은 작품으로, 시사적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1704년(숙종 30)에 지은 기행 가사 「영삼별곡(寧三別曲)」과 1748년(영조 24)에 지은 「도통가(道統歌)」는 각기 나름대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시는 주제·소재·시어·기법 면에서 모두 파격적 참신함을 보여 준 점에서 그 특성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전통의 터전 위에서 새롭게 열리는 근대기를 내다보면서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해 낸 점이나, 시기적으로 정철(鄭澈)·박인로(朴仁老)·윤선도(尹善道)의 시의 주맥(主脈)을 이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말년에 가의대부(嘉義大夫)의 예우를 받았다. 저서로는 간행본 『옥소집(玉所集)』(13권 7책)과 필사본 『옥소고(玉所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