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 안에 「낙민루」 · 「북산루」 · 「춘일소흥」 · 「영명사득월루상량문」 등과 함께 수록된 것이다. 필사로 전해지던 원본을 1947년 이병기(李秉岐)가 처음 활자화하여 출판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의유당이 「동명일기」를 짓게 된 것은, 남편 신대손(申大孫)이 함흥지방 관직을 맡아 현지로 떠나게 될 때 동행하여 수년간 머물러 있으면서 일출경관을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동명의 해와 달뜨는 경관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1771년 8월 21일에 동명을 찾았으나 일기가 좋지 않아 일출 관람에 실패하고, 1772년 9월 17일 재차 출발하여 동명의 장엄한 일 · 월출 경관을 보게 된 감동을 쓴 것이다. 또한 이 글은 함흥에서 동명까지의 두 번에 걸친 여행길과 내왕하며 보고 겪은 일들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 그 가운데 고기잡이와 풍물패를 거느린 선유, 태조의 유적지들을 관람한 일들이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한편은 가이 업슨 창해오 한편은 ○○한 뫼힌듸 바다가흐로 길히 겨우 무명 너븨만은 하고 고 녑히 산이니 쌍교를 인부의 머여 가만가만 가니 물결이 구비텨 홍치며 창색이 흉융하니 처음으로 보기 금즉하더라……처엄 낫던 붉은 긔운이 백지 반 장 너비만치 반드시 비최며 밤같던 긔운이 해 되야 차차 커가며 큰 쟁반만하여 븕읏붉읏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이 왼 바다희 끼치며 몬져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번득여 냥목이 어즐하며 붉은 긔운이 명낭하야 첫 홍색을 헤앗고 텬듕의 쟁반같은 것이 수레박회 같아야 물속으로셔 치미러 밧치드시 올라 붙으며 항 독같은 기운이 스러디고……”.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개성 있는 심리묘사와 탁월한 심미적 관찰력, 사실적이며 섬세한 묘사수법, 세련된 문체 등에 있어 조선 후기 여류수필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