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시강원보덕, 첨지사, 함경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1812년(순조 12) 종부시정(宗簿寺正)을 지냈고, 1813년(순조 13) 가을에는 함경도암행어사에 임명되어 다음해 봄까지 관북 일대 24읍 5,700리에 달하는 험준한 노정을 다니며 왕명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이때의 현지 체험은 장편 「북정(北征)」을 위시해 60여 수의 한시를 짓게 했고, 국문 가사 「북새곡(北塞曲)」 등 많은 문필 유산을 남겼다.
1814년(순조 14) 정언에서 사간으로 옮겼다. 1815년(순조 15) 집의(執義)에 임명되었고, 1818년(순조 18) 부승지에 올랐으며, 1819년(순조 19) 잠시 외직을 맡아 회양부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1820년(순조 20) 다시 내직으로 옮겨 부승지를 거쳐 공조참의를 지냈고, 1822년 대사간이 되었다. 그 뒤 1824년(순조 24) 시강원보덕(侍講院輔德)을 거쳐 1828년(순조 28) 첨지사(僉知事)가 되었다. 강유(剛柔)를 겸한 성품으로 관직 수행에 철저했음은 함경도어사 임무를 마치고 올린 서계(書啓)에 잘 나타난다.
그는 문학을 생활화해 장편 「북정」과 한시문 외에도 가사 작품을 통해 삶의 다양한 실상을 펴 보였다. 특히, 장편기행가사 「북새곡」은 함경도어사 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현지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사실적으로 쓴 작품으로, 가난과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현지 백성들의 삶의 실상이 생생하게 부각되어 있다.
회양부사직을 맡아 현지에서 보고 겪은 바를 가사로 지은 「교주별곡(交州別曲)」은 명승지 금강산으로 관광차 오는 상위 계층들의 횡포가 현지 백성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그 실상이 생생하게 부각되어 있다.
기타의 가사 작품 「황계별곡」 · 「희주가」 · 「동호별곡」 · 「제석탄」 · 「금강곡」 · 「춍셕가」 · 「진회곡」 · 「사미인곡」 · 「격젹가」 · 「기슈가」 등도 시의식이나 소재 · 시어 · 기법 면에서 각기 작자의 개성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의 시가 작품들은 근대 의식에 바탕을 둔 점과, 생활 체험을 사실적인 수법으로 작품화한 점이 특성이다. 저서로는 가사집 『북새곡』과 문집 『휴휴집』이 있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북새곡(北塞曲)』
- 『휴휴집(休休集)』
- 『한국고전문학신자료연구』(박요순, 한남대학교출판부, 1992)
- 『능성구씨문헌록』(능성구씨대종회, 198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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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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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마시 급제 : 『을묘식년사마방목(乙卯式年司馬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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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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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함경도 암행어사 역임 : 순조실록17권, 1813년(순조 13) 3월 2일. "함경도 암행 어사 구강이 한의운·신선응 등의 잘못 다스린 실상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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