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훈 ()

권태훈
권태훈
대종교
인물
해방 이후 『민족비전 정신수련법』 ·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등을 저술하며 단학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대종교인이며 한의학자.
이칭
윤명(允明), 성기(聖祈)
여해(如海), 봉우(鳳宇), 물물(勿勿), 연연(然然)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고종 37)
사망 연도
1994년
본관
안동(安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권태훈은 해방 이후 『민족비전 정신수련법』,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등을 저술하며 단학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종교인이자 한의학자이다. 자는 윤명(允明) 또는 성기(聖祈), 호는 여해(如海), 봉우(鳳宇), 물물(勿勿), 연연(然然)이다. 1900년에 출생하여 1994년에 사망했다. 유불선의 사상을 두루 섭렵했고, 대종교 사상의 영향도 받은 듯하다. 1984년 소설 『단(丹)』을 통해 선인으로 알려졌다. 1986년에 한국단학회 연정원을 설립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저서에 『백두산족에게 고함』,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등이 있다.

정의
해방 이후 『민족비전 정신수련법』 ·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등을 저술하며 단학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대종교인이며 한의학자.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인학(寅鶴), 자는 윤명(允明) 또는 성기(聖祈), 호는 여해(如海), 봉우(鳳宇), 물물(勿勿), 연연(然然). 서울 제동(齊洞) 출생. 권율(權慄) 장군의 11대손이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내부판적국장(內部版籍局長), 평산군수 · 진도(珍島)군수를 역임한 중면(重冕)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중면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중현(重顯)과 형제의 의를 끊고, 1907년의 정미칠조약을 계기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권태훈은 이러한 특수한 가계와 집안분위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머니로부터 6세 때 조식법(調息法)을 배운 이래 선도(仙道)의 세계를 접하였으며, 유교경전들을 섭렵하였다.

10세 때인 1909년에는 서울 종로구 마동(麻洞)에 있는 단군교 포교당에서 나철(羅喆) 대종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아버지를 따라 고향으로 낙향하여, 그 이듬해 영동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근대학문을 접하였다. 이 해에 일본유람단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신문물을 견문하였다. 이후 15세 때 다시 일본을 방문하여 유도, 검도 등의 무예를 익혔다고 한다.

13세에 선도계의 거인인 우도방주(右道坊主) 김일송(金一松)을 처음 만났으며, 19세에 그를 따라 구월산에 입산하여 3개월간 선도수련에 입문하였다. 이 때 좌도(左道) · 우도(右道)의 여러 심법(心法) 등을 전수받았으며, 그 뒤 인천에서 산주(汕住) 박양래(朴養來) 등 선도계의 여러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3 · 1운동 이후에는 만주에서 독립전쟁에 참여하였고, 국내로 잠입하여 지하운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 한독당(韓獨黨)에 가입하는 등 정치운동에 나섰으나 고난을 치렀다. 60세 때에 공주에 연정원(硏精院)을 신축하여 수련을 하다가 65세 때에 상경하여 한의원을 개업, 83세가 되는 1982년에 대종교의 최고지위인 총전교에 취임하였다.

1984년에는 『단(丹)』이란 소설을 통해서 선인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1986년에는 한국단학회 연정원을 설립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1989년에 수필집 『백두산족에게 고(告)함』을 출판하였고, 『천부경(天符經)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를 구술, 출판하였다. 또한 1992년에는 『민족비전(民族秘傳) 정신수련법』을 구술, 감수, 출간하였다.

그리고 95세인 1994년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上莘里)에서 운명하였다.

권태훈은 유 · 불 · 선의 여러 사상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주로 선도를 바탕으로 하였고, 시대적 영향을 받아 민족종교인 대종교 사상의 영향도 받은 듯 하다. 6세 때부터 시작한 호흡법을 기본으로 평생 선도수행에 열중하였고, 예언 · 사상 등도 역시 그에 기초한 것이 많았다.

이미 1951년에 이미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예언하였으며, 원자탄의 발명 · 일본의 멸망 · 남북의 통일 · 중국의 분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예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을 비판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문명비평가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권태훈은 선도수련을 대중화시키고자 선도수행법을 소개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체계화시켰다. 선도는 수행방법과 조직 · 논리 등이 ‘비인물전(非人勿傳)’, 즉 비공개를 원칙으로, 수행자들간에만 전달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의적(秘儀的)이고 신비적이었으며,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도수련의 실제와 과정 및 선도인들의 활동을 역사상의 인물은 물론 당시대의 인물들까지 실명으로 등장시키는 등 공개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선도가 일반화되고, 또한 조직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裏覺)”이란 문장을 사용하여 행위의 측면을 매우 중시하였다.

따라서 선도의 초역사성, 탈역사인식을 극복하고 역사성을 가진 사회사상으로 변화시켜 민족역사에 근원을 둔 수행과 인식을 통해 민족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21세기는 문명의 내용과 실현 방법 등에서 전환이 일어나고 주체가 백인에서 황인으로 바뀐다는 ‘황백전환론(黃白轉換論)’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문명의 전환과정에서 한민족이 적극적인 주체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역할론이 바로 ‘백산대운론(白山大運論)’ · ‘백두산족론(白頭山族論)’이다. 이러한 문명관은 학문과 수행, 사상적 편력 등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형성되었으나, 천지도수의 변화, 원상(原象), 산법(算法) 등의 선도적 방법론도 근거로 하고 있다.

권태훈의 존재와 사상은 『단』이란 책을 통해서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으로 여겨졌던 기(氣)의 존재를 일반화시켰다. 또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논리화되지 못했고, 조직적인 사회운동이 되지 못했으나 1980년대 인간의 정신과 가치관은 물론 사회문화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왜곡당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자긍심을 갖게 하였으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민족 내부의 문제를 뛰어넘어 세계는 물론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시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단(丹)』(김정빈, 정신세계사, 1984)
『백두산족에게 고(告)함』(권태훈, 정신세계사, 1989)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권태훈 구술 및 감수, 안기석 연구, 정재승 엮음, 정신세계사, 1989)
『민족비전 정신수련법』(권태훈 감수, 정재승 편저, 정신세계사, 1992)
『봉우일기』(권태훈 저, 정재승 엮음, 정신세계사 1998)
『봉우선인의 정신세계』(봉우사상연구소, 정신세계사, 2001)
『일만년 겨레얼을 찾아서』(봉우사상연구소, 정신세계사, 2001)
『세상속으로 뛰어든 신선』(정재승 편저, 정신세계사, 2002)
『선도공부』(권태훈 구술, 정재승 엮음, 솔출판사, 2006)
「봉우 권태훈 선생님 대담」(윤명철, 『민족지성』 제9호, 1986)
「봉우 권태훈 선생의 생애와 사상」(윤명철, 『한국정신과학학회지』 제2권 제2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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