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수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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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종친과 문무관원의 출입 때 시중을 들던 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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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종친과 문무관원의 출입 때 시중을 들던 노비.
내용

‘구종(驅從)’·‘별배(別陪)’ 등 일종의 몸종으로 ‘근수(跟隨)’라고도 하였다.

≪경국대전≫에는 관원의 품계에 따라 근수노의 수를 규정하였는데, 궁궐 안에서는 대군 4명, 왕자군 3명, 종친 및 문무 당상관 2명, 3품 이하는 1명으로, 그리고 궁궐 밖에서는 공사(公私)를 아울러 대군 13명, 왕자군 12명, 1품 10명, 2품 9명, 3품당상관 7명, 3·4품 5명, 6품 4명, 7품 이하 3명으로 규정하였다.

또 ≪경국대전≫에는 중앙의 각 관서에 할당하는 근수노의 정수를 규정하였는데, 종친부 552명, 충훈부 130명, 중추부 93명, 내시부 37명, 의정부 36명, 사헌부 34명, 돈녕부 31명, 병조 22명, 형조 22명, 통례원 22명, 홍문관 21명, 호조 20명, 승정원 18명, 이조 17명, 예조 17명, 공조 17명, 한성부 15명, 성균관 15명, 훈련원 15명, 의빈부(儀賓府) 14명, 예빈시(禮賓寺) 13명, 도총부(都摠府) 12명, 군기시 12명, 군자감 12명, 관상감 11명 등이며, 그 밖의 관서는 10명 이하 소수이다.

그리하여 중앙 86개 관서에 총 1,480명이 배당되었다. 이들은 선상노(選上奴)로서 각 관서의 해당관원에 배당되었는데, 대군에게 10명, 왕자군에게 8명, 1품종친에게 6명, 문무관에게 5명, 2품종친에게 5명, 문무관에게 4명, 3품종친에 3명, 문무관에 2명(단 당상관이면 각각 1명을 더 주었음.), 4품종친에 2명, 문무관에 1명, 5·6품은 종친·문무관에게 모두 1명으로 하였으며, 경연은 9품에 이르기까지 1명으로 하였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문종실록』
『예종실록』
『경국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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