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61장). 필사본.
체재는 한문으로 지은 <금강중용도가서 金剛中庸圖歌序>와 그 한글번역인 <금강쥬ᇰ용도가서>, 그리고 <금강중용도가> 및 그 한문번역으로 되어 있다.
<금강중용도가서>는 산문인 데 비해 <금강중용도가>는 가사이다. 4음보 1구로 계산하면 전체 285구이며, 음수율에서는 3·4조와 4·4조가 우세하지만 다른 종류의 음수율도 많이 보인다.
<금강중용도가서>에서는, 금갑도(金甲島)의 귀향살이 6년 동안에 짓고 필사한 글이 40여 책이 되는데, 자신이 유배지로부터 돌아올 때에 가지고 온 것은 자손들로 하여금 자신의 경력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또한 <금강중용도가서>에 따르면, 원고본 <금강중용도가>는 분실되고 황씨 부인의 전사본에 의거해서 저자가 재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강중용도가>의 내용은 5단으로 짜여져 있다. 제1단에서는 청춘시절을 다 허송하고 만년에 유배지에서 지나간 일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한탄하면서, 몇 해 만에 얻어 본 ≪중용서≫ 한 권이 조리가 정연한 책이더라는 것을 노래하였다.
제2단에서는 ≪중용서≫가 중국에서 정리되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송시열(宋時烈)로 이어졌으나, 송시열이 죽은 지 백여년에 그 정통을 이은 자가 누구냐고 묻고, 주나라 무왕(武王) 후에 끊긴 도통(道統)이 정조에서 다시 밝았으나 49세로 단명하였음을 한탄하였다.
제3단에서는 작가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40세 후에 통적(統籍 : 궁문의 출입을 허락한 門籍)에 올라, 17년간 성주(聖主)를 모셨으나, 이제는 죄인이 되어 금갑도에 유배되었음을 묘사하였다.
제4단에서는 유배지에서 ≪주역≫ 한 질을 얻어 훈고(訓詁)까지 정리하여 5권으로 매어 몽중의 금강(金剛) 두 글자를 가져다가 제목으로 하여 읽어보려 하였으나, 동짓달 어려움으로 고생하였음을 진술하였다.
제5단에서는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주인이 ≪중용≫을 한 권 얻어주어 그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내는데, 몇 마디 되지 않으나 오묘한 논지가 어렴풋이 드러나므로, 애지중지하며 차마 감히 손에서 떼지 못하겠다고 술회하였다.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 및 사회상과 사대부의 유배생활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역사의 이면, 즉 정조의 사망원인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작자의 종손 태진(泰鎭)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