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조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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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박해용(朴海容)이 입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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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말기에 박해용(朴海容)이 입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의복.
내용

1983년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금관조복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국가의 경사 · 정조 · 동지 · 성절 등의 의식에 착용하였던 대례복이다. 소장자에 의하면 이 유물은 조선 말기 승지였던 박해용이 착용하던 유품이라고 하며 금관을 제외한 조복 일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조복은 적초의(赤綃衣) · 적초상(赤綃裳) · 청초중단(靑綃中單) · 폐슬(蔽膝) · 대(帶) · 후수(後綬) · 패옥(佩玉) · 화(靴) · 홀(笏) 등으로 일습을 갖추는데, 의(衣)와 상(裳)은 각 품이 동일하나 부속 제구들은 품계에 따라 구분하였다.

조복과 제복의 제도는 한말 수차례의 복제개혁에도 불구하고 선왕의 유제라 하여 계승되었다. 그러나 부분적인 변화는 있었는데, 본 유물은 이러한 제도를 반영하고 있다.

가장 위에 입는 적초의는 겹옷으로 되어 있는데 겉감은 순인으로, 안감은 항라로 만들어진 붉은색의 비단옷이다. 깃과 소맷부리, 도련에는 흑색 선이 둘러져 있고 그 사이에는 가느다란 백색 선이 끼워져 있다.

깃 모양은 당코깃 형태이며 총 길이 90cm, 화장 92.5cm, 품 50cm에 이른다. 뒷길 진동선 밑으로 후수를 고정시키기 위한 매듭단추 3개가 달려 있다.

청초중단은 청초의라고도 하는데 적초의 밑에 입는 받침용으로서 청색 비단으로 만들고 흑색 선이 둘러져 있다. 중단은 백색으로 되어 있었으나 고종대에 이르러 청색으로 바뀌었다. 총 길이 123cm, 화장 90cm, 품 48cm로서 적초의보다 길어 아랫부분이 드러나게 된다.

상은 적초의와 청초중단 사이에 입는 것으로, 전3폭(前三幅) 후4폭(後四幅)의 제도를 따라 앞이 좁게 되어 있다. 붉은색 비단 겹치마로서 흑색 선이 둘러져 있고 길이 78cm, 앞폭 31.5cm, 뒷폭 42cm이며 각각 청초중단 앞길과 뒷길에 고정시킨 약식으로서 말기의 제도를 반영하고 있다.

대대는 붉은색과 흰색의 공단을 겹으로 하여 만들었으며 여기에 후수를 달아 고정시켰다. 후수는 붉은색 비단에 운학문을 수놓았으며 금환(金環) 1쌍이 상 · 하로 부착되어 있는데 윗부분에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것이 원칙이므로 보수시 잘못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각대 양옆에 달게 되는 패옥은 청색 비단 주머니에 들어 있다. 홀은 상아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17.5cm, 폭 3.1cm, 3.8cm로 아래가 넓게 되어 있다. 서각(犀角)으로 만든 길이 118cm의 서각대와 길이 29cm, 높이 23cm의 목화가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도 6양관(六梁冠)의 제관(祭冠)과 제복(祭服),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이 유물은 고종이 황제로 승격된 후의 제도가 반영된 한말의 유물로, 약식으로 처리된 방식 등 당시의 조복 일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관복』(고광림, 화성사, 1990)
『경상남도문화재대관』 -도지정편-(경상남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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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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