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44.4㎝. 금관은 내관(內冠)과 외관(外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관은 신라금관의 전형이다.
1921년에 발견된 이 금관은 원형의 머리띠 정면에 3단으로 ‘출(出)’자 모양의 대생지(對生枝: 마디마다 두개씩 마주 붙어서 나는 가지) 수목형(樹木形) 입식(立飾) 세 개와, 뒤쪽 좌우에 두개의 사슴뿔모양[鹿角形]장식이 세워져 있다.
대륜 상하와 입식 주위에는 점렬문(點列紋)이 찍혀 있고, 많은 비취색 곱은옥[曲玉]과 원형의 영락(瓔珞)이 규칙적으로 금실에 매달려 있다. 또한 양끝에는 가는 고리에 금사슬이 늘어진 두 줄의 수식(垂飾)이 달려 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심엽형(心葉形)의 영락을 달았으며, 끝에는 금모(金帽)를 씌운 비취색의 곱은옥이 매달려 있다.
이와 같은 외관에 대하여 내관으로 생각되는 관모(冠帽)가 관 밖에서 발견되었다. 이와 비슷한 예가 경주시 천마총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내관은 삼각형·철형(凸形)·능형 등의 문양이 투각된 얇은 금판(金板)을 오려서 만든 세모꼴 모자에 역시 복잡한 투각문양(透刻文樣)과 많은 영락이 장식된 새 날개모양[鳥翼形]의 금판 관식을 앞에 꽂게 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새 날개 모양을 관모의 장식으로 꽂은 것은 삼국시대 사람들의 신앙을 반영한 것으로 샤머니즘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