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의 친병으로 금군삼청(禁軍三廳) 또는 내삼청(內三廳)이라 하여, 겸사복(兼司僕)·내금위(內禁衛)·우림위(羽林衛) 등이 있어 그에는 각각 종2품직 장(將) 3인씩을 두었으나, 모두 타관이 겸직하였으므로 그 통솔에 지장이 많았다.
그리하여 1652년(효종 3) 내삼청장은 그 이름만 있을 따름이고 실제 통솔하지 못하고 있다 하여 종2품직 금군별장 2석(席)을 신설, 금군삼청의 금군 629인 중 1·2·3번은 좌별장(左別將), 4·5·6·7번은 우별장(右別將)이 통할하도록 하였다.
그 뒤 1666년(현종 7)에는 금군청을 설치하고 내삼청을 통합, 그 예하에 두면서 병조판서 겸직의 대장(大將) 아래 금군별장 1인을 두고 겸사복장(兼司僕將) 2인, 내금위장(內禁衛將, 정3품) 3인, 우림위장(羽林衛將, 정3품) 2인을 통할하게 하였다.
1755년(영조 31) 금군청을 용호영(龍虎營)으로 개칭한 뒤에도 별장만은 금군별장이라 하였는데, 왕의 친병을 실제로 통할하는 막중한 직위였으므로 반드시 각 군문(軍門)의 중군(中軍, 종2품) 또는 평안도병마절도사·통제사 등을 역임한 자 가운데에서 포도대장 및 각 영문의 대장이 의논하여 선임, 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