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함양박씨세보(咸陽朴氏世譜)』에 실려 있다.
총 6장으로, 작자가 금성(錦城 : 지금의 羅州)의 교수로 있으면서 가르친 제자 10인이 소과에 급제하자 그 감격을 자랑한 내용이다.
제1장에서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주 고을은 빼어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곳임을 자랑하였다. 제2장에서는 이 고장의 유생들이 향교를 중심으로 하여 일으킨 면학의 기풍을 찬양하였다. 제3장에서는 당시의 나주목사 김춘경(金春卿)과 통판(通判) 오한(吳漢)의 선정을 칭송하였다.
제4장에서는 작자의 교훈이 교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을 자랑하였다. 제5장에서는 이 고장의 유생 10명이 함께 급제한 것을 고을의 장하고 아름다운 일로서 칭송하고, 또한 나주의 벌족인 금성나씨 일문에서 6명이나 함께 급제한 영광을 노래하였다.
제6장에서는 급제를 축하하는 고을 잔치에서, 가무와 음주를 즐기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는 유생들을 칭찬하였다. 문학사적으로 이 작품은 찬양을 하며 감격을 나타내는 노래인 경기체가의 전통적 성격을 보여주는 마지막 작품이다.
형식은 이미 정격형에서 벗어나 변격형으로 옮겨간 모습을 하고 있다. 후에 작자의 후손 순우(淳愚)의 「금강별곡(金剛別曲)」과, 이화(履和)의 「낭호신사(朗湖新詞)」와 「만고가(萬古歌)」에 영향을 주어, 일가의 문맥을 잇게 하였다.